[한경에세이] 속도의 시대 ‥ 박봉규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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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규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bongkp@kotef.or.kr >
이달 초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한국 기업들은 각종 상을 휩쓸면서 디지털 가전 기술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뽐냈다.
우울한 경제관련 소식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2005년이 희망의 해가 될 것임을 보여줬다. 세계 최고 제품이 모이는 이런 전시회에서 주목 받는 상품이 갖춰야 할 첫째 요건은 뛰어난 기술력이다. 신기술이 접목된 제품이 아니면 아예 명함을 내놓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제품출시에 관한 타이밍이다.
물론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들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값 싸고 좋은 물건을 누구보다도 빨리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2등은 경우에 따라 꼴찌만 못하다.
비용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포커에서 돈을 가장 많이 잃는 사람은 패가 나쁜 사람이 아니고 2등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인 것과 마찬가지다.
속도의 중요성은 비단 기술개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칭기즈칸의 기병부대가 최소한의 가벼운 무장으로 유럽원정에 나선 것이나 2차대전 초기 탱크를 앞세운 독일의 전격전 앞에 프랑스의 마지노선이 힘없이 무너진 것은 모두 승패를 결정함에 있어 속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다.
상대성 원리를 표시한 공식인 E=mc♥에서 보더라도 에너지가 질량에는 단순히 비례하지만 빛의 속도에는 제곱에 비례하지 않는가.
속도가 바로 경쟁력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지만 오늘날 그 중요성은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기술축척의 양이 많아지고 정보화가 촉진되면서 아날로그 시대 1년의 변화가 디지털시대에는 3개월 또는 1개월도 걸리지 않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기 때문이다.
속도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창의성과 성실성이다.
새로운 계기를 만들고 새로운 시도를 이끌어 내는 열쇠는 다름 아닌 창의성이다. 그러나 창의성은 굳게 닫힌 문을 빼꼼히 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그 문을 활짝 열어 나가는 것은 성실성의 몫이다.
남들보다 더 오래 연구실에 불을 켜고 실험장비에 매달리는 끈기가 필수적인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에서 우리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오랜 세월을 통해 은근과 끈기로 다져온 성실성과 최근의 젊은 문화에서 나타나는 창의성이 어우러진다면 우리가 속도경쟁에서 세계의 어떤 나라에도 뒤처질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