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가 적용되는 기업집단의 자산기준을 현행 5조원으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배구조 등 일부 졸업기준을 구체화하거나 벤처투자 등 예외인정 범위를 보완하는 선에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출자총액제한제 자체에 대한 폐지 요구가 무산되자 재계는 시행령에서 자산기준이라도 상향 조정해 달라는 의견을 제시해 왔었다. 하지만 예고된 입법 내용대로라면 과거와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는 셈이다. 기업들이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이런 족쇄를 언제까지 유지하겠다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다. 최근 정부가 규제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출자총액제한제 같은 핵심규제가 철폐되지 않는 한 그것은 겉치레 규제개혁이 될 뿐이다. 시장의 감시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음에도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나 투자행위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 자체가 반시장적 규제에 다름없는 것이고 이런 규제를 없애지 않고선 투자 촉진과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그동안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해 왔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재벌개혁이니 뭐니 하는 정치적 명분 때문에 규제철폐는 무산되고 말았다. 시행령을 통해서라도 정부는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입법예고 기간에 재계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고 했다. 한편으론 기대를 갖게 하지만 또 다시 구두선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재계의 자산기준 조정 요구만 해도 정부가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현재 자산 5조원 기준은 규제 실익은 전혀 없이 그 언저리에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더 이상 성장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 그런 식으로 규제하다보면 국내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고사하고 국내시장마저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안 전반에 대해 기업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