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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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 온다//도편수의 거동을 보소.먹통을 들고서 갈팡질팡한다//석수쟁이 거동을 보소.방망치 들고서 눈만 껌벅껌벅한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 불린 '경복궁타령'으로 대표적인 경기민요다.
이 민요는 팔도에서 동원된 장정들이 일에 지쳐 노래한 것이라고 전해지는가 하면,무리하게 원납전을 거둬 공사를 강행하자 이를 풍자한 것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은 조선 말기에 재건되면서 광화문도 함께 지어졌다.
조선 왕조의 상징격인 광화문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없애려 했으나 온 국민의 반대에 부딪쳐 동쪽으로 옮기는데 그쳤다.
그 후 한국전쟁 속에서 폭격으로 불타버렸고,1968년에 또 다시 복원됐다.
우여곡절 끝에 광화문은 제자리를 찾았지만 한글현판이 줄곧 문제가 되어 왔다.
경복궁의 공간배치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글씨방향도 원래와는 달리 거꾸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논란거리는 글자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광화문'이라는 한글 글씨였다.
광화문이 복원되면서 한자 대신 고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친필로 대체된 것이다.
'光化門'의 의미는 깊다.
광천화일(光天化日)에서 '光'과 '化'자를 따 왔다고 하는데 '광천'은 밝은 태양이고,'화일'은 나라가 오래도록 태평무사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동문을 동춘문(東春門),서문을 영추문(迎秋門)이라고 명명한 것과는 달리 정문이랄 수 있는 광화문에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마침내 문화재청이 오는 광복절을 맞아 한글현판을 내리고 조선 정조 글씨의 한문현판으로 바꾼다는 소식이다.
정조 글씨를 택한 것은 그가 역대 임금 중 명필로 꼽히는데다 비석글씨가 많이 남아 있어 집자(集字)하기가 쉬워서라고 한다.
서울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광화문이 본래 한자를 되찾고 아울러 그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아직도 왜곡돼 있는 전국의 문화유산들을 찾아내 고치고 다듬는 일을 서둘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