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한 폐가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함민복 시인(43)이 10년만에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을 펴냈다.


세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6)를 출간한 뒤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2003) 한 권만을 내놨으니 이번 시집은 그의 10년 강화도 생활의 시적 보고서인 셈이다.


'우연히 놀러 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문산으로 갔다 그곳 땅값이 올라서'였든지 강화도로 온 뒤 한동안 이방인처럼 지내기도 했던 시인은 차츰 개펄의 속삭임과 그 힘을 조용히 체득하게 된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이 힘은 '말랑말랑한 힘'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개펄에서 시인은 문명에 대한 성찰과 이에 대한 반성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시적 서정을 발견한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쉽게 만들 것은/아무것도 없다는/물컹물컹한 말씀이다/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소금물 다시 잡으며/반죽을 개고 또 개는/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전문)


부드러운 뻘 속에 구멍을 파고 살아가는 낙지 모시조개 갯지렁이처럼 강화도 동막리 폐가에서 가난을 벗삼아 사는 시인의 삶은 평온하다.


수평선처럼 낮게 가라앉은 세계엔 수직으로 곧추선 욕망의 곡예가 없기 때문이다.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인간의 마음은 더욱 각박해지고 황폐해질 뿐이라는 게 시인이 전달하는 메시지다.


수평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인에게 자연은 위대한 말씀이자 시와 사랑이 되기도 하지만 그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토로한다.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그늘 학습' 전문)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