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가전업계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치열해지는 경쟁과 이에 따른 제품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PC업계처럼 대규모 구조조정과 통폐합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소니,필립스등 메이저 가전업체들이 신기술,신생업체들의 도전,가격하락등으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며 "업체수에서 비즈니스 모델까지 가전업계가 전반전인 지각변동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요 업체 4분기 실적 악화=가전업계의 부진은 일본 한국 유럽 주요 업체들의 최근 분기 실적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소니는 지난해 10∼12월 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고 밝혔다. DVD레코더와 평면TV 가격은 연 평균 30% 하락했는데 비용은 그만큼 줄이지 못한 결과다. 필립스도 TV부문 등의 손실로 순익이 40%나 줄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는 이번주 초 플라즈마TV의 생산 과잉과 달러화 약세 등으로 올해 영업마진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파이어니어도 DVD드라이브 등 제품들의 가격 하락 때문에 순익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NEC는 휴대폰,PC,오디오제품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저조한 수요로 인해 분기 순익이 94%나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1980년대 PC업계 상황과 흡사=WSJ는 현재 가전 업체를 압박하는 요인들이 20여년 전 PC 업계가 직면했던 문제들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IBM 등 소수 대형 업체들이 컴퓨터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가 표준화돼 각각 전문 업체로부터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누구나 PC 회사를 세울 수 있게 됐고,이 때부터 가격인하 경쟁이 벌어졌다. 가전시장 역시 TV,디지털카메라 등의 부품들이 표준화되면서 누구나 저가로 제품을 개발,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중국 등에서 신생 업체가 대거 등장,기존 메이저 업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존 업체들은 이에 대응,평판 디스플레이,디지털카메라 칩 등 신규 사업부문에 앞다퉈 뛰어들었지만 이번엔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평면TV에 사용되는 LCD패널은 삼성전자,대만의 AU옵트로닉스 등이 신규 생산시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지난해 3분기 가격이 20% 하락했고,4분기에도 추가로 20% 떨어졌다. DVD레코더는 대중화되기도 전에 치열한 경쟁으로 가격 하락이 시작된 경우다. ◆업체간 제휴 등 활로 모색=가전업계는 열악해지는 영업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주력 분야 재조정,업체간 제휴,구조조정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활로를 모색 중이다. 필립스는 의료장비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RCA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의 톰슨SA는 방송과 영화장비용 전문기기에 주력키로 하고 TV제조 분야를 중국 합작 벤처사에 넘겼다. MP3플레이어 업체인 한국의 레인콤과 일본 오디오 업체 온쿄는 PC와 같이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소니와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최대 LCD패널 공장을 짓기 위해 손을 잡았고 히타치,도시바,마쓰시타도 역시 같은 목적으로 제휴관계를 맺었다. 마쓰시타는 지난해 향후 4년간 1만7천명을 줄이기 위한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