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DNA 판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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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의 끝장면에서 형사가 피의자를 놔주면서 뱉는 말이다.
80년대 후반의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형사는 유일한 증거물로 미국에 의뢰했던 사건현장 정액의 유전자(DNA) 감식 결과가 용의자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나오자 울분과 허탈감 속에 주저앉는다.
유전자 감식의 역사는 짧다.
국내의 경우 영화에서처럼 86∼87년까지 처리하지 못했고,미국에서도 본격화된 건 90년대 초 OJ 심슨 사건 이후다.
지금은 TV시리즈 CSI(과학수사대)에서 보듯 혈액이나 침은 물론 머리카락 한 올 심지어 손톱조각이나 비듬만 있어도 DNA를 추출해 피해자나 범인의 신원을 확인한다.
DNA 판별은 이처럼 사건 수사나 친자 확인 등에 쓰이지만 삼풍사고나 대구지하철 참사,쓰나미같은 엄청난 재해나 사고 뒤에 사망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도 널리 이용된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거나 사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일 때 피해자 유족은 어떻게든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뼈조각만이라도 찾고 싶어하는 까닭이다.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와 이화학연구소가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신원을 알 수 있는 휴대용 DNA 판독기의 공동개발에 착수,1∼2년 안에 실용화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현재의 DNA 판독은 판정까지 반나절 이상 걸리는 데다 비싼 시약이 필요한데 이 휴대용 판독기가 개발되면 2시간 안에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려웠던 부패시료의 식별도 가능해진다고 한다.
DNA검사가 불가능하면 남녀에 따라 얼굴이나 몸의 뼈구조가 다르고 성인의 경우 영구치의 마모율이 일정한 점을 이용,유골이나 치아 모양으로 성(性)과 연령을 확인한다.
그러나 DNA판독에 비해 시간도 더 걸리고 정확도도 떨어진다고 한다.
영국에선 DNA를 통해 범죄자의 성(姓)을 밝힐 수 있는 검사법까지 개발되고 있다는 마당이다.
국내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있어 지문과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각종 사건 사고의 원인을 찾지만 재해 현장의 신원파악까진 힘이 못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휴대용 DNA판독기의 등장으로 가족의 생사확인도 못해 사방을 헤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