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정권의 강제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는 '인간 도살장''인간 광기의 현장' 등의 끔찍한 수식어들이 따라붙는다. 수백만명의 유태인들을 잡아다가 가스실에서 처형하고 생체실험을 감행한 만행의 현장은 이제 박물관으로 보존되면서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많은 생존자들은 아우슈비츠의 지옥을 고발하고 있다. 3년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임레 케르테스는 10대 시절에 겪은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야만적인 힘에 부딪치는 극한상황에서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문학적으로 조명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소설 '운명'에서 홀로코스트(대량학살)는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부에 있는 한 작은 도시이름이다. 나치 친위대 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믈러는 독일과 폴란드의 정치범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1940년 이 곳에 제1호 수용소를 만들었다. 이듬해 제2,3의 수용소가 잇따라 세워지면서 대량학살시설로 변했다. 50여만평의 광대한 부지에는 붉은 벽돌의 단층건물로 28개 동이 3열 횡대로 열지어 있는데 이 야만적인 현장은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1월27일 소련군에 의해 발견됐다. 올해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60주년을 맞아 엊그제 현지에서는 여러 국가 지도자들을 비롯한 생존자 및 유가족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많은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서도 한 나치 친위대원의 고백이 눈길을 끈다. "나로선 용서밖에 빌 수 없을 뿐이라고…".당연한 얘기로 들리지만 그동안 죄를 뉘우치는 대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각종 인체실험으로 수십만명을 죽여 '죽음의 천사'로 불린 요제프 멩겔레는 망명 후 죽을 때까지도 전혀 죄책감을 토로하지 않았었다. 잔혹행위의 박물관이라고 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숨진 희생자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4백만∼6백만명으로 추산할 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며 우리 독립투사들이 고문으로 숨져간 서대문형무소를 떠올린다. 우리 역시 해방 60년이어서다. 아우슈비츠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일 게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