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 전경련 신춘포럼 강의 ] "올해는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저금리 기조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자금이 주식 국고채 간접투자상품으로 몰릴 것입니다. 이같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들은 취급하는 금융상품의 종류를 늘리고 덩치를 키우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금융지주 황영기 행장은 최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춘포럼에서 올해 국내 대형 은행들의 행보를 이같이 내다봤다. 다음은 강의의 요약. ◆급변하는 국내 금융환경=올 한 해는 국내 금융시장 변화가 여느 해보다 심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경우 대출에서 생기는 이익폭이 더욱 줄어들 것이다. 현재 은행권의 대기업 대출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97년까지만 해도 대기업 대출이 전체 대출의 40%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8월께는 그 비중이 8%까지 떨어졌다. 이는 신규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빚을 갚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메운 것이 가계와 중소기업의 대출이다. 97년 말 각각 59조원,1백2조원에 불과했던 가계대출과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해 8월 2백70조원과 2백38조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연체율이 높아 은행으로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연체비율은 2003년 2.1%에서 지난해 10월에는 2.8%까지 높아졌다. 반면 주식이나 간접투자 상품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저금리 때문에 은행에 돈을 맡겨봐야 이자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고객들이 자금을 주식이나 간접투자 상품 쪽으로 계속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은행이 이익이 줄면 예대마진 폭을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경영 개선을 꾀했다면 이제 근본적인 수익구조를 바꿔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은행도 변해야 산다=현재 은행들이 추진하고 있는 생존 방안은 대형화 겸업화 전문화로 요약된다. 주요 은행들이 잇달아 증권 보험 투신업체를 인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도 LG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가고 있다. 은행은 앞으로 금융상품 슈퍼마켓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금융과 관련한 모든 상품을 한 곳에서 이용할 수 있어야 은행은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고객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높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 종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금융회사와 제휴해 취급하는 금융 상품 종류를 늘리는 한편 해당 상품에 대한 상담 능력도 높여야 한다.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경쟁사의 금융 상품도 직접 팔아야 외국계 은행과 서비스 경쟁을 할 수 있다. 돈을 빌리거나 금융 상품을 사는 것 외에 컨설팅 기능도 갖춰야 할 것으로 본다. 은행은 인수·합병이나 기업 구조조정을 상담하고 경영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돼야 한다. 은행의 역할이 뱅커(banker)에서 금융 상담자(financial asviser)로 바뀐다는 얘기다. 기업에 대한 대출관리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은행의 경우 우량 기업은 금리를 더 낮추고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금리를 높일 것이다. 펀더멘털이 우수해 조금만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는 기업에는 지속적인 지원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과감하게 정리하겠다. 은행들이 이(異)업종에 연달아 진출하며 덩치를 키우면 제2금융권이 고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토종 은행들이 씨티 스탠다드차터드 HSBC 같은 매머드급 외국계 은행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본다. 토종 은행들이 외국 은행의 '대항마' 역할을 하지 못하면 중소기업과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서비스가 위축받는 등 공적 금융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다. 향후 국내 은행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특히 인사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 은행들은 순환보직제로 운영돼 왔고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도 없었기 때문에 '전문가'도 '스타 플레이어'도 키우지 못했다. 앞으로 은행들도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 못지 않은 인적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