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익 규모는 충당금 쌓기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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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결산에서 충당금이 또 '마술'을 부리고 있다.
1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리.하나.신한은행등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규모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데는 충당금 효과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충당금이란 은행이 빌려준 돈 가운데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 미리 쌓아두는 자금.
가령 은행이 이자수익,수수료 등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충당금적립전 이익)이 많더라도 부실자산이 증가,충당금 적립액이 늘어나면 당기순이익은 줄어들게 된다.
이번 결산에서도 은행별로 충당금에 의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하나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1조4백74억원)이 2003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데는 충당금 효과가 컸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2003년에는 8천2백91억원의 충당금을 쌓았지만 작년에는 그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순이익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당초 1조원을 소폭 상회하는 당기순이익을 예상했으나 충당금 감소 등의 영향으로 그 규모가 1조6천억∼1조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민은행은 2년째 충당금 덫에 걸려 있다.
영업창출력을 가늠하는 충당금적립전 영업이익 규모는 우리은행이나 하나은행을 훨씬 웃돌지만 순이익은 충당금적립 영향으로 5천억원 안팎에 머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충당금을 은행 마음대로 정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 기준에 따라야 한다.
요주의 여신은 2∼19%,고정여신은 20∼49%,회수의문은 50∼99% 이상,추정손실은 1백% 등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여신등급별로 최소기준만을 정해놓고 있어 은행의 '재량권'이 상당부분 발휘될 수 있다.
통상 은행들은 최소 적립기준 만큼 쌓고 있지만 이를 더 쌓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지난 1998년 주택은행장으로 취임 후 충당금을 대폭 쌓아 적자를 기록한 게 대표적인 케이스다.
덕분에 이듬해부터는 충당금 부담에서 벗어나 실적이 대폭 호전되는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은행장이 충당금을 이용,실적을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못하도록 감독당국이 기준을 강화했다.
실제로 국민은행이 이번 결산에서 고정여신에 대한 충당금을 회수의문에 가까울 정도로 쌓으려고 했지만 금감원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지난해 19개 국내은행의 전체 당기순이익은 5조∼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2003년도의 1조8천억원에 비해 3배가 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충당금 부담이 전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게 큰 도움이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3년 결산 때는 19개 국내은행이 쌓은 충당금이 10조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작년에는 가계대출과 카드의 신규 부실이 줄어 충당금 부담도 줄었다.
게다가 SK네트웍스 여신에 대한 충당금 가운데 1조원가량이 환입되기까지 했다.
SK네트웍스의 여신등급기준이 '고정'에서 '요주의'로 바뀌면서 충당금 적립률이 40∼50%에서 2%선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