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만 믿다가 모든 걸 잃었습니다. 차라리 노조가 없었더라면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텐데…."((주)코오롱 구미공장 노동조합원 C씨.필름 생산라인 근무) 생산직 근로자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아왔던 (주)코오롱 구미공장에서 노동가요가 사라졌다. 지난 31일까지만해도 노조 집행부는 물론 민주노총 산하 화섬연맹 간부들과 구미지역 시민단체들까지 합세해 치열한 선전전을 벌였지만 노사간 합의서가 발표된 1일 오후 구미공장은 적막에 휩싸였다. 코오롱 노사는 이날 오전 생산직 2천52명 가운데 24.8%인 5백9명을 감축하고 총 임금을 15% 삭감하는 내용의 '인원조정 합의서'를 체결했다. 사무직은 이미 45.1%인 4백65명이 명예퇴직을 신청,이번 합의로 전체 종업원의 31.6%인 9백74명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대의원들은 합의서 내용에 반발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산라인에서 만난 일반 조합원들은 합의 내용에 관한 공고문을 침착한 모습으로 읽고 있었다.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된 게 그나마 다행이죠.회사가 잘 돼야 노조도 있는 겁니다. 그동안 노조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해왔어요. 구미에서는 코오롱 노조가 가장 강성이었죠.회사가 어려우면 진작에 실감하고 노조가 먼저 임금을 삭감하는 풍토가 조성됐어야 하는데…."(조합원 K씨·스판덱스 생산라인 근무) C씨,K씨를 포함한 대부분의 조합원은 그동안의 노조 활동에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24일부터 있었던 파업 찬반투표가 조합원의 투표 참여율이 낮아 중단된 것도 노조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K씨는 "지난 연말 대의원 투표 때는 서로 안 나가려고 해서 조합이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질책도 쏟아졌다. 조합원 P씨는 "민주노총은 너무 정치적인 색깔을 띠고 있고 조합원들의 이익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며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한국노총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말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연말 이미 조기퇴직을 신청한 K씨는 "화섬산업이 경쟁력을 잃은 지난 2000년께부터 이런 사태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그때 미리 조금씩 준비했더라면 이처럼 대규모로 인원을 감축하는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회사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한 조합원은 회사가 그동안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회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재무상태나 영업이익도 투명하게 보여주고 했더라면 임금을 30∼40%씩 삭감하는 데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64일간 파업을 거치는 등 지난해 여름부터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코오롱 구미공장은 이제 기나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화섬공장에서 첨단 정보기술(IT) 소재 공장으로 변신한다는 회사측 방침에 따라 앞으로 1년간은 생산보다는 설비 증설과 근로자 교육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오롱 노사가 오늘의 고통을 교훈 삼아 구미공장을 완전히 새로운 공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구미=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