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 승부를 먹고 사는 프로기사들. '신의 한 수'를 찾아 19로 바둑판이란 우주를 끝없이 헤매야 하는 그들의 삶은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달프기만 하다. 연중 세자릿수에 가까운 공식대국을 치러야 하는 스타 기사들의 나날은 더할 나위가 없다. 인생이 애닯을수록 휴식은 달콤한 법. 바야흐로 설이다. 이번 설은 주중에 포진하고 있어 열흘 가까운 황금의 연휴를 보장하고 있다. 공 식대국이 잡혀 있지 않은 프로기사들 역시 이기고 지는 골치 아픈 일상을 떠나 모처럼 꿀맛같은 휴식을 누릴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다면 스타 기사들은 이번 설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9명의 프로기사들에게직접 들어 보았다. ▲이창호 9단 한국 바둑계의 '국보' 이창호 9단은 매년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전주에 내려가 설을 지냈지만 올해는 그냥 반포동 아파트에서 할머니와 조촐히 보낼 계획이다. 며칠전 미리 다녀온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설 연휴 직후인 11일에 국수전 도전2국이잡혀 있기 때문. 1국에서 최철한 9단에게 맥 없이 패한 그로선 이날 대국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수 없다. 집에서 푹 휴식하다 시간이 나면 가까운 산에나 오를 생각이라고. ▲서봉수 9단 지난해 10월 29살 연하의 베트남 여성과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낳았던 서봉수 9단은 과연 이번 설을 어떻게 보낼까. 부인이 베트남으로 가지 않아 궁금증을 더하고있다. 그러나 밋밋하게도 서 9단의 신혼 첫 설은 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얼마전부터 권갑용 바둑도장에 나가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이번 설에 어김없이 출근해 어린 기재들과 바둑판을 놓고 씨름을 벌일 예정이다. 서 9단의 '출강'은 사실상 바둑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부분.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무엇보다 본인 자신이 언급하고 있듯 아이들과의 대국을 통해 싱싱한 승부의 '기'를받아들이고 싶단다. 과연 활화산같은 승부사 서 9단다운 회춘법(?)이라 할 만하다. ▲최철한 9단 국내기전 3관왕으로 이창호 9단과 한국 바둑을 양분하고 있는 스무살의 열혈청년 최철한 9단. 그는 현재 한중 바둑대항전에 출전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중이다. 이 창호 9단과의 국수전 일전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 설 연휴의 컨셉은 '잘 쉬기'로잡았다. 컨디션 조절이 최우선이란 얘기. 최 9단은 프로가 되면서 아버지, 형과 약속을 한 것이 있다. 바로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둑을 한판 두기로 한 것. 아버지 최덕순씨는 여섯 점, 형 최석원 씨는 더욱 약해 아홉 점을깔아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작년 추석에 최 9단에게 쓴 맛을 봐야 했다. 컨디션 조절도 중요하지만 이 가문의 전통(?)은 최 9단이 꼭 지키고 싶어하는 만큼 올해도 어김없이 성사될 전망이다. ▲박영훈 9단 후지쓰배, 중환배 우승으로 일약 국제기전 2관왕에 등극한 박영훈 9단은 다른일반 가정과 비슷한 설을 보낼 예정. 아버지 박광호씨가 형제 중 맏이인 이유로 명절이면 가양동 집에 친지들이 한데 모여 설을 지낸다. 박 9단은 삼촌들과 볼링을 치러 갈 계획인데 아마 유단자인 막내 삼촌이 도전(?)해 오면 기꺼이 한 수 가르쳐 드릴 생각이다. ▲이세돌 9단 이세돌 9단은 현재 중국 여행 중이다. 2004 한국바둑리그 한게임바둑팀 주장으로 출전해 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다른 3명의 선수들과 함께 회사측으로부터 중국 포상여행 티켓을 선물로 받았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근해의 비금도. 평소에는 형 이상훈 5단과 함께 고향을 찾지만 올해는 형이 바둑도장 일로 바빠 혼자 내려갈 계획이다. 비금도 고향 집은 어머니가 지키고 있다. ▲루이-장주주 부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인 기사이자 세계 최강의 9단 부부로 유명한 루이나이웨이와 장주주 커플은 설을 맞아 상하이를 찾는다. 상하이는 아내 루이나이웨이의 고향. "처갓집에 가시네요?"라고 말했더니 장주주 9단이 씨익 웃는다. 6일에 가서 열흘 이상 푹 쉬다 올 계획. 설은 중국에서도 최대의 명절이다. ▲목진석 8단 '괴동' 목진석 8단은 어떻게 설을 보낼 것이냐는 질문에 지루하다는 듯 하품부터 해 보인다.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내게 될 것 같은데 솔직히 아무 계획도 없단다. 오히려 기자에게 "뭔가 재미있는 일 좀 없느냐"고 되물어 왔다. ▲한해원 2단 한국바둑의 '얼짱' 한해원 2단의 설은 어떨까. 연예인 뺨치는 화려한 미모를 지닌 그녀의 설은 뜻밖에도 평범하고 소박하다. 집에서 조용히 어머니의 설 음식 장만을 도울 계획. 영화 보러 갈 계획도 없느냐고 묻자 "계획은 없는데 누가 보러 가자고 하면 거절할 생각은 없다"고. 먼저 제의하는 사람이 '데이트'의 행운을 차지할수 있을 것 같다. ▲조훈현 9단 조훈현 9단은 일산의 형님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조9단의 집에서 차례를 지냈으나 올해부터는 형님댁으로 차례상을 옮겼다. 긴 연휴 기간에 별 다른 계획은 세워두지 않고 있다. 가족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라고 하자 당장조 9단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 불경기에 가긴 어딜 가" ranbi361@empal.com (서울=연합뉴스) 양형모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