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8:39
수정2006.04.02 18:42
CRC(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부실기업 수가 줄어 시장이 크게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자금력을 가진 은행과 자산운용사들이 잇달아 사모펀드(PEF)를 설립,구조조정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CRC는 법적으로 PEF 참여가 불가능해 입지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위축되는 구조조정 시장
CRC가 생긴 것은 지난 99년.
정부는 법정관리 기업 등 부실회사 회생에 모험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산업발전법을 만들었다.
CRC가 부실기업에 투자하면 양도세 배당소득세 등을 면제해 준다는 근거조항이 여기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부실기업 시장이 확대됐던 지난 2002∼2003년에는 한때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에 등록된 CRC가 1백개를 넘었다.
이들이 부실기업 인수 등을 통해 처리한 부실채권만도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기업이 팔려나가면서 시장은 축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반면 정부 규제는 강화돼 지금은 등록된 CRC가 50여곳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PEF를 허용하는 간접투자자산법이 발효되자 CRC업계는 치명타를 맞은 분위기다.
◆PEF와 CRC
CRC가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법정관리 화의 파산 등 부실기업과 워크아웃기업,최근 3년간 1회 이상 부도난 기업,결손 기업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렇다 보니 그나마 구조조정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나 대기업에서 분할된 회사,LCD업계처럼 소규모 업체가 난립해 구조조정이 필요한 회사 등에는 투자할 수 없다.
이에 비해 PEF는 구조조정회사뿐 아니라 투자적격기업에도 투자가 가능하다.
덕분에 자금을 확보하거나 투자원을 찾기도 훨씬 쉽다.
여기에 펀드의 상위펀드인 모(母)펀드를 모집할 수도 있다.
CRC 시장은 사실상 'PEF 시장의 일부'로 편입된 셈이다.
◆제한적 투자 허용 요구
이에 따라 한국CRC협회는 채권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를 3일 산업자원부에 제출했다.
보고서 요지는 "핵심업무를 충족한 CRC에 대해서는 PEF를 운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줘야 한다"는 것.핵심업무란 자산의 일정부분(30∼50%)을 부실기업에 투자해 운용 중인 회사를 지칭한다.
이를 통해 구조조정시장은 더욱 활성화되고 CRC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면 새로운 투자재원이 마련돼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CRC가 자산운용사로 전업을 하거나 합병되는 상황이 오면 99년 이후 쌓아온 구조조정 노하우가 궤멸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