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산업으로 거듭나야] (5)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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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학년이 대표이사와 이사를 맡고 1,2학년들은 부장이하 일반 직원을 맡는다."
"기업으로 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주어진 예산범위 안에서 마케팅과 매니지먼트 전략을 세운다."
30명 정도의 학생이 회사와 똑같은 비즈니스 조직을 만들어 기업을 미리 체험해 보는 미국 미시간 공대의 "엔터프라이즈"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다.
미시간 공대생들은 이런 학습을 통해 기업에 들어갔을 때 바로 현장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역량를 기른다.
엔터프라이즈 프로그램은 GM 아메리텍 킴벌리클라크 등 15개의 대기업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이 자발적으로 후원하고 있을 정도로 기업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미시간공대는 학생의 학점도 학과보다는 실무능력에 비중을 두고 평가한다.
이 학교에서 'A' 학점을 받으려면 다른 학생과 차별화된 실무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실무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기업 인턴과정을 통해 현장 경험도 익혀야 한다.
이렇게 쌓은 '취업 전 커리어'는 학생의 이력서에 상세하게 반영된다.
미시간공대 취업 알선센터가 2002년 도입한 새 이력서는 학점이나 이수과목 대신 '나는 어느 동아리에 소속돼 어떤 비즈니스에 적합한 역량을 길렀나' 또는 '나는 어떤 기술을 지니고 있나' 같은,기업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 메워진다.
"나는 3학년 때 대학의 주선으로 포드사에서 5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면서 신세대의 자동차 선호도 변화에 대한 시장 조사 경험을 쌓았고,여름방학 3개월동안 보잉에서 해외의전(해외바이어 접대) 실무경험을 익혔다"가 이러한 이력서의 예다.
미시간의 엔터프라이즈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참여한 조벽 교수(한국계)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 혁신은 미시간 공대뿐 아니라 MIT 캘리포니아공대 등 주요 이공계 대학에는 일반화됐다"며 "대학이 기업과 동떨어진 연구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앞선 공과대학들이 '고객(기업 등)마인드'로 무장하고 '맞춤형 인재육성'에 매진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이공계 대학들은 '이공계 살리기''우수학생 유치'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국 대학의 고질적 문제는 특성이 없다는 것.조벽 교수는 "미시간이나 독일의 산업체 부설대학처럼 현장에서 환영받는 인력을 길러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초 연구 인력 배출에 집중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우수인력은 해외유학을 떠나고 중간 수준은 기업으로 가지만 환영받지도 못한다.
기업도 '실패한 대학교육의 피해자'라고 하소연한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이공계 대학교육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대학 졸업자를 채용한 후 숙련된 인력으로 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년이며 1인당 1천만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
삼성 그룹의 경우 이공계열 신입사원 재교육에 연간 8백억원 이상을 쓴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웃나라 일본 대학 졸업자의 경우 대학 졸업 후 3년6개월이면 최고 능력을 발휘하는 데 비해 한국 대학 졸업자는 3년6개월은 가르쳐야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믿고 맡길 수 있다"며 "이공계 인력이 충분하지도,자질이 뛰어나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공계 대학을 나온 대학 졸업자들도 불만이 많다.
한국공학한림원이 서울대 등 주요 6개 공대를 졸업한 이공계열 직장인 5백1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서울대 공대 졸업생들은 '교육의 적절성' 항목에서 1백점 만점에 39.32점을 줄만큼 모교의 커리큘럼에 대해 대해 부정적이었다. 다른 대학출신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송형석·장원락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