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다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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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여자'와 '데몰리션 맨'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영화다.
전자는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의 소동을 다룬 블랙코미디,후자는 거친 경찰과 잔혹한 킬러의 대결을 그린 SF액션물이다.
생판 상관없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엔 일맥상통한 요소가 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인물들의 등장이 그것이다.
계기와 수단은 다르다.
'죽어야…'의 두 여자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위해 묘약을 먹음으로써,'데몰리션 맨'의 두 남자는 냉동감옥에 갇힘으로써 30여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는다.
한쪽은 화학적,다른쪽은 물리적 요법을 택한 셈이다.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을 위한 국제적 연구의 두 축을 보여줬다고나 할까.
인간의 불로장생법 개발을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 연구팀이 동물의 수명을 최대 10배까지 늘릴 수 있는 노화조절 페르몬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연세대 생화학과 백융기·정만길 교수팀이 선충의 몸 속에 존재하는 페르몬의 일종인 '다우몬'의 생체 노화조절 기능을 규명했다는 것이다.
선충은 성장과정에서 뭔가 부적합한 상태가 되면 휴면기(장수유충)에 들어갔다가 환경이 좋아지면 깨어나 평균 수명보다 훨씬 긴 기간동안 생존하는데 다우몬이 바로 그 비결이라는 얘기다.
다우몬 수용체를 찾아낸 다음 사람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노화와 비만 방지에 유효하리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 시절 25세에 불과했던 평균수명은 20세기 들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의 경우만 해도 1960년 52.4세에서 75년 63.8세,2001년엔 76.5세가 됐다.
이대로 가면 멀지않아 1백20세에 이르고 어쩌면 1백50세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온다.
불로장생은 유사 이래 인류의 꿈이었다.
그러나 '사오정 오륙도'(45세 정년,56세 현직 도둑) 시절이 계속되는 한 평균수명 80세도 반갑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여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다.
'죽어야 사는 여자'의 남자주인공은 불로장생약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안죽는다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건 끔찍해.그건 희망이 아니라 악몽이야."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