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근절이나 과거사진상규명 자체를 탓하지않습니다. 연초부터 총리 경제부총리 경제단체대표들이 잇따라 '국내에서 돈쓰기 정책을 편다''미풍양속인 설선물 주고받기 운동을 벌인다'고 해서 올 설대목은 모처럼 기대해볼만하겠구나했는데…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하필 설대목을 앞두고 들고나올게 뭡니까. 작년에도 연말을 앞두고 성매매특별법을 내놓아 크리스마스 경기에 찬물을 끼얹더니…" 서울 테헤란로에서 주류수입·도매회사를 경영하는 D씨. 설 연휴를 앞둔 요즘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설 대목을 겨냥해 수입한 칠레산 와인이 당초 스케줄대로라면 90% 이상이 팔렸어야 하는데 아직 절반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D씨는 연초부터 경기분위기가 좋아진다는 '뉴스'에다 재경부가 부동산 시장 규제를 다소 푸는 방향으로 정책을 트는데 고무돼 수입량을 늘렸지만 "김샜다"고 하소연했다. '설 선물 주고받자'는 주장을 해온 대한상공회의소의 한 관계자도 "정부가 설을 일주일 남짓 앞둔 지난 3일 부패 청산이나 방지에 소극적인 공공기관에 대해 조직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뒤 분위기가 싹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D씨도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들은 현정부들어 '투명경영' 차원에서 거래업체들로부터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해오다 올 설엔 경기를 감안해 방침을 바꾼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그 역시'없었던 일'이 돼버렸다"고 주장했다. ◆'소박한 선물'도 문전박대=중견 패션그룹 대표 K씨 사무실에는 선물박스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지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보낸 '소박한' 선물이 '문전박대'를 당한 채 모두 되돌아왔다. K씨는 "기업이나 공직에 있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울까 고심고심해서 골랐는데… 공무원 사회나 대기업에 '투명강박증'이 생긴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한 정부부처에는 총리의 '미풍양속 차원의 선물권장령(?)'에도 불구하고 '선물 금지령'이 내려졌다. 해당 부처 공무원은 "문제될 수 있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식용유 선물도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 4일 주요 실·국과 출입기자단에 4kg들이 '강냉이' 한 자루씩을 선물로 보냈다. '선물 주고받기'에 동참하면서도 '부담없는 선물'을 찾아야 하는 고위 관료들의 고심을 보여주는 일단이다. ◆'야속(?)'한 '클린카드'=룸살롱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에서 사용할 수 없는 '클린카드'도 설 대목을 앞두고 관가 등에 빠르게 전파되면서 소비업소들을 기분잡치게 만들고 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공기업 등에 권고한 '클린카드'는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 이어 민간 금융계로까지 퍼지고 있다. 업소들은 이 클린카드를 접대비 실명제와 성매매방지 특별법에 이은 '제3의 소비악재'로 지목하는 분위기다. 클린카드 사용이 제한된 유흥업소에서의 기업 지출이 전체 업무추진비의 평균 30%가량을 차지하는 데다 유흥업소의 매출부진은 목욕탕 이·미용업 등 관련 서비스업과 주류업계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승우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클린카드가 확산되면 소비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지만 '클린'이란 이름이 걸려있는 카드의 사용을 정부가 막을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며 "관련 파장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황식·차병석·김혜수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