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고향을 두고 남쪽에 온 탈북자들은 설을어떻게 보낼까.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숫자가 6천 명을 돌파하면서 명절 때마다 고향에 가보지 못하는 애환을 호소하는 탈북자들도 그만큼 늘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입국한 탈북자들은 설을 맞아 달리 갈 곳도 마땅하지 않아 비슷한처지에 있는 동료 탈북자들과 모여 명절 음식을 나누면서 향수를 달래는 게 보편적인 설 풍경이 됐다. 탈북자 정모(37)씨는 "지난 설에도 혼자 지내는 친구끼리 모여 술이나 마시면서보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푸념했다. 2003년 단신으로 남한에 입국한 박모(23)씨도 설을 맞아 딱히 갈 곳이 없기는마찬가지다. 그는 "광복 이후에 월남한 친척들이 남쪽에 터를 잡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촌수가 워낙 먼 친척들이라 갈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드물지만 일부 탈북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실향민들이 주로 찾는 망배단이나 오두산ㆍ도라산ㆍ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를 찾아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대다수 실향민들이 70ㆍ80 고령이 되면서 해마다 이곳을 찾는 실향민들이 점점줄어들고 있는 반면 또 다른 형태의 실향민으로 볼 수 있는 탈북자들이 서서히 그빈자리를 메워가고 있는 셈이다. 탈북자 신문 `새동네' 편집장을 맡고 있는 탈북자 최승철(35)씨는 "이번 설에는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과 가족을 데리고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 땅을 바라보면서 새해에는 좀더 분발하자는 각오를 새롭게다지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탈북자들로 구성된 인터넷 자유북한방송(www.freenk.net)은 설 당일 도라산 전망대를 찾아 이곳을 방문한 탈북자를 상대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남북사회복지실천운동본부(대표 구영서 목사)는 설 다음날인 10일 하나원을 방문, 개그맨 엄용수씨와 가수 이금자씨 등 연예인을 초청해 탈북자를 상대로 위문 공연을 벌일 예정이다. 그나마 가족과 함께 입국했거나 나중에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온 탈북자들은 사정이 비교적 나은 편이다. 재작년에 입국한 탈북자 김모(42)씨는 설이면 북에서 모시고 온 어머니를 찾아 서울에서 부천까지 `짧은 귀성길'에 오르기도 한다. 작년만 해도 중국을 거쳐 몰래 북한에 들어가 설을 보내고 돌아오는 탈북자들도종종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지난해 말부터 국경 지역 경비가 부쩍 삼엄해지면서올해에는 이런 소문이 나돌기도 힘든 실정. 다만 북한을 탈출한 뒤 아직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한 가족을 만나기위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탈북자들도 간간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행히도 이번 설에는 월드컵 동반 진출을 노리는 남과 북의 축구팀이 각각 쿠웨이트와 일본을 상대로 결전을 벌여 탈북자들은 남북 양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면서 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 phillif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