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운전중 접촉사고를 당한 홍모씨(45)는 견인차가 안내한 정비업체에 차를 맡겨 26개의 부품을 새로 갈았다. 이후 비만 오면 트렁크물에 물이 고이고 차가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새로 바꾼 26개의 부품 모두가 중고이거나 재생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금 누수를 야기하는 범죄 유형중에는 이처럼 자동차 정비업체들에 의한 사기행위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값싼 중고품이나 재생품을 사용한 뒤 보험회사로부터는 정품 값을 받아 챙기는게 대표적 사례다.


아예 수리하지도 않은 부품 값을 청구해 챙기는 업체도 있다.


정비업체의 이같은 사기행위는 생명을 담보로 하고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잘못된 부품을 사용한 자동차의 경우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비업체에 대한 단속강화와 함께 이들을 처벌할 법률을 정비하는 등의 제도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만연된 '가청'


'가청'이란 '가짜 청구'의 줄임말.업계에서 통용되는 속어다.


정비업체가 차량 부품값을 가짜로 청구한다는 의미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은 S사 등 9개 정비업체를 입건했다.


이들은 사고차량이 들어오면 정품가격의 20∼30%에 불과한 중고품이나 재생품을 사용해 차를 수리했다.


정품업체에서 받은 부품은 곧바로 반품했다.


정품업체는 보험사로부터 받은 보험금(정품 기준) 중 20%를 챙기고 나머지 80%를 정비업체에 내줬다.


이들 정비업체는 특히 운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핸들과 동력·제동장치까지 닥치는 대로 중고·재생품을 사용했다.


문제는 이런 '가청'이 상당수 정비업체에 관행화돼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과 손해보험협회가 작년 3월말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등의 44개 자동차정비업체에서 수리한 5백7대의 자동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2%인 3백46대의 차량에서 '가청'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비업체들이 부당청구해 가로챈 금액은 6천5백16만원.조사 대상 자동차 5백7대에 지급된 부품비 6억5천60만원의 10%에 달했다.


지난 2003회계연도(2003년4월∼2004년3월)에 정비업체에 지급된 부품비가 9천5백66억원이므로 이 중 10%인 9백56억원이 이런 식으로 부당지급됐을 것이라는 게 손보협회의 추정이다.


◆'통값'이 1차적 원인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 조사에서는 견인차와 정비업체의 결탁도 확인됐다.


견인차업주들이 사고차량을 소개해준 대가로 정비업체로부터 대당 20만∼25만원의 이른바 '통값'(사고차량 알선비용)을 받아온 것.'통공장'(통값을 지급하고 사고차량을 수리하는 정비업소)들은 이 통값을 벌충하기 위해 부품 값을 부당청구했다.


견인차와 통공장의 '공생관계'가 가청 보험사기의 1차적 원인이 된 셈이다.


보다 근본적으론 정비업소가 신고제로 전환된 이후 전국에서 7천여개가 난립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과도한 경쟁으로 수익구조가 악화되다 보니 정비업체들이 가청사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자동차 소유자가 부품 바꿔치기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관련 법률이 미비하다는 점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시급한 대책 마련


부품 바꿔치기는 운전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현행 법에서는 완구류 등도 안전성 검사를 받지 않고 유통시킬 경우 처벌받는다.


그러나 자동차 재생부품의 경우 안전성 검증 없이 유통시키더라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통값을 받은 견인차 업주에 대한 처벌규정도 없다.


이와 함께 고액의 수리비를 들여 수리했는데도 자동차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 부품을 교체토록 하는 '부품리콜제'를 실시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안병재 손보협회 이사는 "보험사의 담당직원을 대상으로 특별교육을 강화,정비업체의 가청사기를 사전 차단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