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시대,유럽의 청년들 사이에 자살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이 소설은 베르테르라는 청년이 어느 마을의 무도회장에서 멋진 춤을 추는 로테를 만나면서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권총자살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따지고 보면 짝사랑에 다름 아니다. 우리에게도 짝사랑이랄 수 있는 상사병(相思病)이 오래 전부터 얘기되고 있는데 그 유래는 이렇다. 중국 송(宋)나라 말기 강왕은 주색에 탐닉한 나머지 시종(한빙)의 부인까지도 능욕했다. 분별을 잃은 왕은 시종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얼마 후 남편은 아내를 그리워한 나머지 자살했고,이 소식을 들은 아내 역시 목숨을 끊었다. 이 때부터 상사병은 맺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맞사랑'에 이르지 못하는 짝사랑이나 상사병이 마음에 커다란 짐이 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사랑을 하다 이내 마음을 졸이게 되고 마침내 숯검댕처럼 속이 타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어서다. 반쪽짜리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 사는 탓에 갖가지 형태의 신체증상이 나타나고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한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프랭스 탤리스 박사는 최근 '짝사랑도 병'이라며 의학적인 치료를 본격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짝사랑이 사람을 헤어나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 극한적 탈진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조기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울증과 강박장애가 일반적인 정신신경장애지만 그 기저에는 짝사랑이 깔려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짝사랑에 빠지면 자칫 바보인형이 되기 십상이다. 상대방이 자기 안에서 너무 크게 미화돼 자신도 모르게 환상을 그리곤 한다. 연인들끼리 사랑을 나누는 오늘 밸런타인데이에 베르테르와 같은 짝사랑의 아픔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