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의 금융중심지 월가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국정부의 외자유치나 개방확대 의지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 같은 곳에서 월가 인사들이 던지는 질문이나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속에는 도대체 한국정부가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중심지)를 지향하는 게 맞는지 믿기 어렵다는 비아냥이 묻어 있다. 말로는 외자를 환영한다면서 실제로는 외자를 홀대하거나 차별하려는 혼란스런 메시지를 보낸다는 불만이다. 한국에선 국내자본을 역차별한다고 야단이지만 정작 월가에선 한국이 국제기준을 외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외국자본이 인수한 은행에 대해 이사의 절반 이상을 한국인으로 선임하라는 감독당국의 방침이다. 주주가 경영을 잘할 수 있는 이사를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사 선임에 국적제한을 두면 그 취지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월가의 불만이다. 국제기준과 동떨어진 조치라는 반응이다. 미국의 연방법이나 주법에 은행이사의 국적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비슷한 조치를 한국이 도입하려는데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정부의 국제기준 채택의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말에 개정된 증권거래법에서 경영권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국내기업의 주식을 5% 이상 취득할 경우에는 취득 주체의 주주 구성까지 보고토록 한데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월가의 한 관계자는 주주 구성을 밝히라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며 그것 때문에 한국 투자를 포기할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디스커버리 캐피털의 펀드매니저 데이비드 전은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반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일관되고 분명한 방침이 없어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가 내건 정책브랜드의 하나가 금융허브다. 허브가 되려면 국제기준에 충실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 월가에선 그런 의지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