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신도시의 부정적 파괴력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분양권이 로또 복권으로 불리는가 하면 우선순위 청약통장의 불법거래가 활개를 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책 당국자들이 언론을 향해 '제발 판교 좀 죽여달라'고 읍소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판교신도시 개발론은 90년대 중반부터 수시로 제기돼 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서울의 비대화 방지와 환경보전을 명분으로 개발론자들을 제압해왔다. 지난 96년 성남시가 판교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을 때 건설교통부의 C국장은 뚜껑을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로까지 비유하며 개발논쟁 자체를 금기시했다. 그러던 정부가 2002년부터 시작된 수도권 집값 폭등세를 잠재우기 위해 판교신도시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집값 불안이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만큼 강남권 수요를 흡수할 질 좋은 택지를 공급함으로써 집값을 잡겠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다. 결과는 판교가 오히려 인근 분당과 용인은 물론이고 강남 집값까지 밀어올리며 투기열풍까지 불러올 조짐이니 '정책 당국자들이 시장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어쨌거나 구원투수로 등판한 판교신도시가 거꾸로 골칫덩어리가 돼버렸다. 정책 당국자는 물론이고 전문가들까지 동원돼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찾기에 분주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정부와 건설업계,심지어 청약대기자들까지 이제는 이기는 게임이 아닌 지는 게임을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최근 정부가 어떻게든 분양가를 최대한 낮추겠다고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건설업계도 어떤 무리수를 동원해서라도 판교에 자사 아파트를 세우겠다는 태세다. 반드시 판교에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청약대기자들도,당첨돼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서민들도 결코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지는 게임이나마 모양새 좋게 마무리하기가 어려워 보이는 대목들이다. 흔히 정책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시기의 조절도 포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판교의 아파트 분양일정을 재촉하고 있는 정부가 이해되지 않는다. 사업시행기관인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실무적으로 올 상반기 분양이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6월 첫 분양을 독려하고 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가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1년 가까이 약보합세를 보이며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던 집값이 판교 때문에 흔들리고 있어서다. 더욱이 올해는 집값 불안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권에서 8천여가구의 새 아파트 입주가 이뤄지고 5천가구 안팎의 재건축아파트도 일반분양될 예정이어서 집값 안정세가 굳어질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전망이었다. 이런 시점에 터져나온 판교신도시 아파트 분양일정이 꺼져가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아쉬움이다. 정책의 신뢰성을 지켜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도 좋지만 때론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적어도 판교신도시에 관해서는 좀더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차피 올 상반기에 아파트 분양을 시작하더라도 기반시설 설치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야 신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황량한 들판에 아파트부터 세우는 것은 그리 급한 일이 아니다. 굳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면 임대주택과 분양가 연동제를 적용받는 25.7평 이하 아파트부터 분양하자. 김상철 건설부동산부장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