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서민들의 '울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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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연휴 막판이었던 지난 주말 서울 곳곳에서 '어이없는' 폭력 사건이 줄을 이었다.
서울 사당동에서는 20대 청년이 김밥이 차다는 이유로 포장마차 주인 오른쪽 귀밑을 젓가락으로 찔러 불구속 입건됐다.
"김밥이 너무 차서 데워달라고 했더니 주인이라는 사람이 그냥 먹으라고 해서 화가 치밀었다"는 게 그가 밝힌 이유다.
한마디로 '홧김'이었다.
12일에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역 매표소에다 '코 풀 휴지'를 요구하며 매표소 유리창을 발로 차 깨뜨린 30대 회사원이 불구속 입건됐다.
전날 자정무렵 술에 취한 채 매표창구 직원에게 '휴지를 달라'고 우기다 거절당하자 대뜸 발길질을 날렸다.
역시 '홧김'이었다.
같은날인 12일에는 서울 장안동에서 50대 남자가 '제 앞가림도 못한다'는 노모의 타박에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는 일도 있었다.
실직상태였던 그는 어머니가 무능력을 탓하며 꾸짖자 격분,가스레인지 불을 켜곤 그 위에 이불을 내던졌다.
다름아닌 '홧김'이 웬수였다.
최근 들려오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이처럼 홧김에 저질러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부분 주인공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층이다.
취업난,실직난,구조조정….오래고 짙은 불황이 서민들을 옥죄다 못해 고단함을 견디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반증하는 지도 모른다.
'장기불황은 사람을 황폐화시킨다'는 사회학자들의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활의 일상에서 화병·우울증 환자들을 어렵지않게 목견한다.
병원에는 화병을 호소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고 울컥증을 술로 달랜 듯 지난해 소주 판매량은 경기침체가 무색하게 늘어나기도 했다.
틱낫한 스님은 저서 '화(火)'에서 '화란 마음의 상처에서 생겨 끝내 습관이 되고 만다'고 했다.
곳간에서 인심 나듯,곳간이 오래 비면 분노가 나는 법.새해 들어 모처럼 감지된 경기회복 기운이 설연휴 이후엔 본격적인 활성화 국면으로 접어들어 화내고 싸운 사람들이 웃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김혜수 사회부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