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가 반도체 생산의 전초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숙련된 기술력과 저렴한 인건비,정부의 적극적 지원 등으로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은 앞다퉈 동남아에 새 둥지를 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인텔 필립스 등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이 교육 수준이 높고 영어가 잘 통하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으로 생산시설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속속 이전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동남아는 반도체 생산 허브=미국의 대표적 반도체 업체 TI는 지난 90년대 중반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2백50km 떨어진 고산지대 바기오에 공장을 건설했다. 기후가 연중 영상 18도 내외로 에어컨 사용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데다 대학졸업 출신 기술자를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TI는 이곳에서 노키아 휴대폰에 장착되는 반도체 칩의 80%를 생산하고 있으며 연간 수출액만 30억달러로,필리핀 내 최대 수출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텔은 2003년 R&D센터 아시아 본부를 말레이시아에 세웠고,필립스도 태국 필리핀 등의 공장을 계속 증설하고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전기 NEC 등 대형 반도체 업체들은 2000년대 들어 자국 내 생산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함에 따라 동남아에 위탁 생산 주문을 해마다 확대하는 추세다. ◆동남아가 중국보다 낫다=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이 동남아로 몰리는 이유는 저렴하면서도 숙련된 기술자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공장 근로자들은 절반 이상이 대학 졸업자며,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새로운 반도체 디자인에도 빠르게 적응한다. 동남아 각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도 이 지역이 반도체 생산 허브로 급부상하게 된 이유다. 필리핀 정부는 외국계 반도체 기업들이 언제든지 수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휴일은 물론 야간에도 세관 공무원들을 24시간 대기시키고 있다.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관료주의가 심각해 공장 인허가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중국과는 큰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베르토 비에라 TI 필리핀 지사장은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에도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전력난 등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한 중국은 하이테크가 아닌 '로우 테크(low-tech)'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동남아 지역을 선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