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원리주의'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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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출자총액제한 관련 당정협의는 여느 당정협의와 의미가 좀 달랐다.
정부의 대표적인 재벌규제 정책인 출자총액제한을 얼마나 완화하느냐는 노무현 정부가 '실용노선'으로 어느 정도 방향을 틀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권내에서 벌어졌던 출자총액제한의 유지냐,완화냐의 논란은 '개혁주의'와 '실용주의'의 힘겨루기처럼 비쳐졌던 게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날 결과는 정부의 '실용주의 수용 의지'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출자총액제한 대상 그룹의 자산기준을 5조원에서 6조원으로 완화하고,부채비율 졸업기준을 1년간 더 유지키로 한 것은 외형적으론 실용노선으로의 선회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이번 합의로 실제 혜택을 보는 그룹은 대우건설 등 1∼2곳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생색만 내고 알맹이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겉보기엔 실용주의 전환 같지만,실질적으론 개혁 원리주의의 온존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들어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크게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재계뿐 아니라 여당 핵심부와 경제부처들 사이에 꾸준히 제기됐다. 재정경제부 등은 경기회복을 위해 대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출자총액제한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지난달 출범한 여당 새 지도부는 "출자총액제한 자산기준을 7조∼10조원까지 높일 방침"이라고 밝혀 여권이 경제정책에 관한한 확실히 실용노선으로 돌아섰다는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러나 규제완화의 시늉만 낸 출자총액제한 개선은 정부의 자세변화가 여전히 '미완성'임을 실감케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여당 간부는 "청와대의 지침만 되뇌는 공정위와 일부 개혁파 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고 털어놨다.
정부와 여당 지도부는 '실용주의'와 '경제살리기'를 부쩍 강조하고 있지만,또 한번의 이벤트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차병석 경제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