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만수 디지털경제硏이사장 > 국민은행과 한국주택은행이 2001년 합병해 한국의 선도은행(leading bank)으로서 '세계금융의 별'이 된다는 비전을 내걸고 통합 국민은행이 출범했으나 최근 취임한 행장은 "우리는 최하위 수준이며 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대은행이 출범한지 4년이 지난 지금 대대적인 점포 축소와 4천여명의 인원 감축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이 논의될 때 소비자금융 전문은행이었던 두 은행은 기업금융의 맨파워가 없어 투자와 소비가 교차되는 경기를 탈 수 없고 1대 1로 합병할 경우 시너지효과보다 갈등이 클 것이기 때문에 리딩뱅크가 되기 힘들 것이라고 외국은행 사람이 말했다. 기업금융의 맨파워가 강한 한국외환은행이 국민은행이나 주택은행을 인수한다면 리딩뱅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틀리면 감점을 당하는 장학퀴즈 같이 남이 감점을 당할 때 가만이 앉아 있다가 기본점수를 지키는 것으로는 리딩뱅크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어떤 금융인은 말했다. 미국의 한 연방준비은행 조사보고서에서 금융기관의 합병(merger)은 대부분 실패했고 인수(acquisition)는 성공했다고 분석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인사부장이 한쪽에서 나오면 인사담당 임원은 다른쪽에서 나오는 식의 인사가 불가피했고 한쪽이 반대하는 의사결정은 하지 않거나 지연된 것이 이유라고 했다. 컴퓨터센터의 통합 이외에 조직은 두 갈래가 되어 시너지효과보다 갈등이 컸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두 라이벌이 으르렁거리며 서로 상처를 내면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이 합병한 서울신탁은행(나중에 서울은행)은 끊임없는 갈등으로 부실은행으로 전락했고 결국은 하나은행에 인수 당하고 말았다. 인사에서 밀리면 자기의 능력보다 편파인사에 이유를 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속성이다. 조선시대 당쟁의 핵은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吏曹) 정랑(正郞) 자리를 둘러싼 자리다툼이었다고도 하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속성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비슷한 성격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을 하게 된 목적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인수능력 확대를 위한 대형화였다면 우리는 선진국과 같은 협조융자(syndication loan)나 주도은행(lead manager)의 역할이 없기 때문에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외국은행과의 경쟁을 위한 대형화라면 너무 관념론적이라 생각된다. 생산성 향상이 목적이었다면 합병 후 인력감축에도 불구하고 인건비의 비중은 오히려 늘어난 반면 최근의 은행 수익성 증가는 예대마진의 확대가 주요 원인이란 점에서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조흥은행과 제일은행의 자산과 수익의 증가를 비교해 볼 때 이르기는 하나 무엇을 위한 합병이었는지가 의문이다. 공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자발성이 없었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때 경제학자 슈마허의 "Small is beautiful"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합병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그런 건지 모르지만 자기 은행 출신의 행장을 내지 못하니 은행원의 사기는 꺾일 수밖에 없고 외부에서 들어온 행장은 내부사정을 몰라 오래 키운 인재를 낭비하거나 인사에서 갈등을 키우기도 했다. 갈등이 도사리고 기(氣)가 꺾인 조직이 잘 될수 있겠는가.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통합과 같이 형식상 합병이지만 사실상 일방이 주도한 인수(acquisition)의 경우는 갈등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된다. 신한은행의 경우는 조흥은행과 어떤 관계로 통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지나간 일을 새삼 들추는 것은 앞으로의 금융구조조정에 타산지석이라도 삼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공직자의 권한은 주요성에 비해 사후 평가와 책임이 모호해 잘 못이 반복되지 않는가 한다. 권한은 의무와 책임이 따르고 결과가 자기에게 미치기보다 남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권리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