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헛도는 한ㆍ일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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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만큼은 일본을 끌고가면 갔지,절대 끌려다니진 않을 겁니다."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한·일 FTA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가 최근 사석에서 기자에게 밝힌 말이다.
그의 이런 언급은 작년 11월 초 6차 협상을 마지막으로 4개월 가까이 '동면'(冬眠)상태에 빠져있는 한·일 FTA 협상의 향배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된다.
양국 정부가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서로 뒤질세라 협상 지체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여기에 책임공방을 둘러싼 두 나라 언론간의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이 협상 재개 여부를 가름할 주요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일 FTA협상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지루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자국 농수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일본 정부의 머뭇거림 때문이다.
일본은 한·일 FTA 체결로 한국산 농수산물이 대거 유입돼 적지않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련업계의 반발에 부딪쳐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따라 FTA를 통해 농수산물시장을 개방은 하되,관세인하 수준을 완화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입장은 단호하다.
일본 제조업의 공세까지 감수하며 한·일 FTA를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정작 일본이 농수산물 분야에서 발을 빼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일본이 먼저 농수산물 개방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협상 재개가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한 한·일 FTA협상은 장기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작년 4월 칠레와의 FTA 발효 이후 FTA 드라이브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한국이 협상 '공(空)회전'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일 FTA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조업 개방 부담이 큰 상황에서 일본의 농수산물 시장마저 포기하는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FTA 초보국가인 양국이 '제조업 개방 반대'와 '농산물 개방 반대'의 맞대결 양상으로 치달으며 얽혀가고 있는 한·일 FTA협상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호 경제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