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를 진 사미승 둘이 무설전(無說殿) 뒷편으로 난 오솔길을 잰걸음으로 오른다. 지게위에 있는 것은 보온통에 담은 도시락. 밖에서 문을 걸어잠근 채 폐문정진(閉門精進)하는 무문관(無門關) 수행자들을 위한 하루 한끼의 공양물이다. 도시락에 담긴 것은 한 공기 남짓한 분량의 밥과 국,나물 몇 가지,과일 한 개와 우유 한 통이 전부다. 사미승들이 절에서 1백50m가량 떨어진 무문관에 도착하면 오전 11시.가로 1칸,세로 두칸의 좁은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있던 무문관 수행자들이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방마다 외부와 통하는 조그만 '공양구(供養口)'가 열리면 이 곳으로 밥을 넣어준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말은 없다. 단지 침묵만 있을 뿐..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의 백담사(百潭寺) 무금선원(無今禪院). 큰절에서 계곡 윗쪽으로 1백5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무문관은 3채의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구조다. 각각의 건물은 면벽참선하듯이 문이 모두 바깥으로 향한 채 등을 돌리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수행 중인 사람은 모두 11명.선원장 신룡(神龍·50) 스님만 제한된 범위에서 외부와 소통할 뿐 나머지 10명은 철저히 폐문정진 중이다. 한 번 들어가면 1년에서 3년,길게는 6년씩 스스로를 가두고 산다. 밖에서 문을 잠갔기 때문에 도중에 견디지 못하고 나가려 해도 나갈 수도 없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신룡 스님은 "좁은 방에서 자신과 싸우는 동안 거대한 우주의 진리와 하나가 되는 시간에 가까이 가게 된다"고 설명한다. 수행하는 사람에게 깨달음이 없는 것은 갇혀 있는 것이며 죽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깨닫기 전에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스스로 문을 잠근다는 것이다. '무문관'은 원래 송나라 때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가 고인들의 선문답을 엮은 책 이름이다. 1965년 도봉산 천축사에서 두문불출로 정진하는 무문관 선원을 6년간 운영하면서 폐문정진의 수행법으로 자리잡았다. 눕지 않고 참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잠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과 함께 가장 어려운 수행법의 하나로 손꼽힌다. 하루 한 끼의 식사로 몸을 유지하며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몸 관리를 잘못하면 위가 냉해지거나 기(氣)가 머리로 몰리는 상기병,식사량이 적은 데 따른 변비 등으로 고생한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고립된 상태에서 오는 외로움이다. 처음엔 대단한 각오로 시작해도 짧게는 1주일,길게는 한 달이면 고독감이 몰려온다고 경험자들은 전한다. 이 때문에 무금선원 무문관에는 출가한 지 20년 이상 된 구참 납자라야 발을 들일 수 있다. "혼자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선정락에 들고 몸조절을 할 수 있으며 불교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오직 한 곳으로 의심을 몰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게 신룡 스님의 설명이다. 그 결과 매년 깨달음에 다가서는 안목을 갖춘 사람이 한두 명씩 나온다고 신룡 스님은 덧붙인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1년(647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한 고찰로 만해 한용운 스님은 이곳으로 출가해 오세암에서 오도(悟道)했다. 만해 스님 당대에 오세암에 있었던 오세선원은 한국전쟁 때 전소됐다가 지난 72년 다시 문을 열었으나 선원을 이끌던 성준 선사가 갑자기 입적하면서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런 백담사에 선원이 문을 연 것은 지난 98년.회주 무산(霧山·73) 스님이 관음전을 무문관으로 개설했다. 시인이며 '조오현'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무산 스님은 백담사 아래에 만해 사상을 실천·선양할 만해마을을 조성하고 매년 '만해 축전'을 여는 등 백담사 일대를 수행과 문화의 공간으로 중창한 주역.용성-고암 선사의 법맥을 이은 성준 선사의 적자로 무문관을 개창하고 3년간 직접 폐문정진에 동참했다. "꼭 깨침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참선은 모든 고통의 원인인 번뇌를 제거해 완전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게 하는 묘법(妙法)이 될 수 있다"며 신룡 스님은 일반인들에게도 참선을 권한다. 신경물리학자 허버트 벤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화두 없이 그냥 가부좌를 틀고 10분가량 명상하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을 높여주는 T-임파구와 엔돌핀이 증가한다고 한다. 값비싼 소비재가 난립하며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는 웰빙문화보다는 내적 수행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선(禪)지향적 삶이 진정한 웰빙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무문관의 반대편 쪽,백담사 만해당 뒤편에는 또 하나의 특별 선원인 대한불교조계종의 기본선원이 지난해부터 운영되고 있다. 기본선원이란 출가해서 행자 교육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은 예비승(사미)들을 위한 참선 수행처로 '불교사관학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만큼 청규도 엄격하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참선에 1시간 이상의 운력(運力·노동),저녁 예불 후 다음날 사시공양 때까지 절대 묵언 등 초심자로선 쉽지 않은 조건들이다. 기본선원 참여자들은 문경 봉암사에서 1년 수행한 뒤 무금선원으로 와서 다시 1년간 정진한다. 현재 수행 중인 사미승은 25명.30∼40대가 주축을 이루고 20대는 두 명뿐일 정도로 전문직 출신의 '늦깎이' 출가자들이 많다.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자명(慈明·55) 스님은 "어떤 권력이나 욕망을 성취하는 일보다 인간이 가장 통쾌하게 해볼 만한 일이 바로 도를 닦아 견성을 해마치는 일"이라며 정진을 독려한다. 선사들의 다그침이 눈덮인 백담계곡에 몰아치는 칼바람 같다. '사내라고 다 장부 아니여/장부소리 들을라면/몸은 들지 못했어도/마음 하나는 다 놓았다 다 들어올려야/그 물론 몰현금(沒弦琴·줄 없는 거문고) 한 줄은/그냥 탈 줄 알아야'(무산 스님의 시 '일색변3') 인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