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중공업의 기업현장 보고서는 2003년 3월 최평규 회장이 통일중공업을 인수한 직후 정리해고를 고민하는 대목서부터 차곡차곡 일지를 적어 나간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3백∼4백명의 직원을 정리해야 한다는 경영컨설팅 보고서와 주위의 충고에 고심을 거듭했던 최 회장의 솔직한 심정이 눈길을 끈다. 고민 끝에 최 회장은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1천4백명 전 사원이 한명의 낙오자 없이 다함께 살아보자'고 결심을 세운다. 그러나 녹록지 않았다. 최 회장이 격려금조로 삼영의 통일중공업 신주인수권을 노조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하자 노조는 '주식을 이용한 현장장악 의도'라고 투쟁의 대립각을 세웠다. '민주노조 허상','현실을 직시하자'는 일반 노조원들의 호소가 사내 게시판에 오르기 시작하는 등 뒤죽박죽이었다. 노조는 '마치코바('동네 작은 공장'이라는 뜻의 일본식 표현) 출신이 어찌 통일중공업과 같은 큰 회사를 경영할 수 있겠냐'며 최 회장의 경영능력을 대놓고 비난했다. 결국 2003년 7월부터 임단협은 파업투쟁으로 숨가쁘게 치달았다. 최 회장은 "파업을 하면 하루에 1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달래기도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노조는 적자가 나는 회사에 총 2백20억원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7월19일.파업을 견디다 못한 사측은 차량공장에 대해 직장폐쇄라는 강수를 뒀다. 7월24일 파업투쟁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노조는 조건없는 쟁의행위 철회를 했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교섭이 다시 결렬되고 조업중단 사태까지 도달했다. 8월8일 노조의 정·후문 봉쇄 때문이었다. 회사가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소폭의 임금인상을 제시하자 노조는 '강제적인 생산성 향상은 더 큰 손실을 부른다'면서 맞섰다. 보고서에는 정·후문 봉쇄기간 노조의 적나라한 행태도 낱낱이 기록돼 있다. 노조원들이 공장 정문 옆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술판에 도박판까지 벌였다는 것. 2003년 8월8일 오후 2시 창원공장 소회의실.회사측 교섭위원 대표인 최 회장은 급기야 노조 교섭위원들의 욕설로 수모까지 당하게 된다. 8월18일,통일중공업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갖고 통일중공업 투쟁에 전력 집중한다고 거들었다. 노사 모두에 상처만 안긴 2003년의 후유증은 그렇게 이듬해로 넘어갔다. 2004년 1월에 이어 2월에도 영업적자가 발생한 데다 원자재 가격폭등,극심한 내수침체로 회사는 노조에 구조조정 협의를 요청했다. 파국만은 막자는 취지였다. 긴 산고 후 드디어 4월27일 휴업휴가 2백50명,임금동결 등을 포함하는 내용의 노사 대타협을 이뤄냈다. 임금과 일자리를 빅딜하는 '도요타식 윈-윈' 대타협이었다. 20여년만에 첫 무분규 임단협 타결이었다. 대타협 후 놀랍게도 정상화의 탄력이 붙어나갔다. 노사화합은 2004년 8년만의 영업흑자,22년만의 배당이라는 알찬 결실을 낳았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