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총선 계기로 본 이라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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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이정표(milestone)는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할지,순탄할지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볼 기회를 준다.
미국은 최근 마무리된 이라크 총선을 이번 전쟁의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임시 정부에 결핍돼 있었던 합법성과 권위가 생겨 유혈 충돌이 줄어들지,반대로 수니파들의 적개심이 커져 저항이 더욱 격렬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거를 계기로 이번 전쟁의 잘잘못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부시 정부가 전쟁을 택한 이유는 후세인 정권을 이성적인 다른 힘으로 대체시키면 아랍 세계의 정치 권력 전반이 개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엔의 경제제재가 후세인 정권을 약화시키는 데 실패한 상황에서,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이 선택된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목적이 달성됐는지 여부는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수년 동안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계속 폄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번 전쟁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후세인 정권이 사라졌고 특히 이번 선거를 통해 자유의 힘을 입증했다.
공포에 억눌려 있던 사람들에게서 투표소를 찾아가는 용기를 끌어낸 것은 바로 이 자유에 대한 염원이다.
하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실수가 저질러졌고 그 결과 이번 전쟁을 필요 이상으로 비싸고 위험하게 만들었으며 너무나 많은 생명과 재산,정치 자본이 희생됐다.
미국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 중 하나는 하필 전쟁 중에 감세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감세를 한 탓에 재정 적자는 눈덩이 처럼 불어났고,위험한 전쟁터에 직업 군인 대신 방위군과 비정규군을 보냈으며,군의 사기는 저하됐고,미군의 자부심이었던 교육 시스템은 활기를 잃었다.
또 미국은 최근까지도 저항 세력이 후세인 추종자,지하드,전과자 등 5천여명에 불과하다고 우기면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종전 직후 애국심만 있는 사람들로 체계적이지 못한 임시 행정부를 구성해 현지 통치권을 맡긴 것도 잘못이다.
전후 복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사업권을 이라크인들에게 줘 길거리를 방황하는 성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고 다국적 기업들에 맡김으로써 외국인 노동자의 채용 기회만 늘려놨다.
또 게릴라 전쟁을 치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토종 치안 세력을 키우는 것인데 최정예 미군에 맡겨도 모자랄 이 일을 비넬이라는 민간 회사에 맡겨버린 것도 우리가 저지른 실수 중 하나다.
이번 전쟁은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가져왔으며 미국과 이라크 모두 많은 피의 대가를 치렀다.
모든 전쟁은 끔찍한 실수를 수반하는 법이라고 쉽게 말하는 일부 미국인들도 지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8천여 미군 사상자를 명예롭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행히 미국은 다는 아니더라도 늦게나마 일부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그 보상으로 이번 전쟁에서 과실을 따고 앞으로도 크고 부유하고 흔들림 없는 나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투표권을 행사한 수백만 이라크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면서 총선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축하하는 이 순간,우리는 다시금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냉철하게 대면하고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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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 대학원 교수인 엘리어트 코헨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