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 소설가 > 어제는 모처럼 인사동에 나갔다. 여고동창의 첫번째 개인 전람회가 열린 날이었다. 여고 때는 얌전하고 조용하기만 하던 이 친구는 일찍 결혼하고 아이도 셋 낳아 키우고 뒤늦게 화가로 입문한 것이었다. 전공이 미술도 아닌 이 친구가 예술가의 길로 뒤늦게 들어선 것이 나는 너무도 대견하고 애틋했다. 예술가가 되면 불행해질까봐 오랜 시간동안 열정을 꼭꼭 누르고 살았다는 순진한 이 친구가 세상에 이렇게 자기 색깔을 내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조촐하게 모인 축하객들 속에는 이름난 화가보다는 반가운 얼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다름 아닌 여고동창들이었다. 졸업하고 거의 30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서로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간혹 틀리게 이름을 부르면서도 첫마디부터 반말이 반갑게 튀어나왔다. 뒤풀이 자리에서 필수코스로 아이들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들 중 두어명이 오늘 졸업식에 참석했노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졸업시즌이었다. 낮에 길거리에서 꽃을 든 모녀나 모자를 여러 번 본 기억이 났다. 한 친구는 낮에 딸아이 중학교 졸업식에 갔다 왔다고 했다. 딸의 꽃미남 남자친구가 와서 캠코더랑 디지털 카메라로 멋지게 딸의 모습을 찍었다고 말했다. 졸업선물로 20만원 뜯겼다는 말도 했다. 또 한 친구는 초등학생인 막내아들 졸업식에 참석했다며 핸드백에서 '디카'를 꺼내 졸업식 동영상 장면을 보여줬다. 비가 와서 교실에서 TV로 졸업식을 거행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선생님 혼자만 심각하고 슬픈 표정일 뿐 아이들은 여느 날의 노는 시간처럼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재학생이 송사를 할 때 코를 훌쩍이다가 졸업가를 부를 무렵이면 울음바다로 변하던 옛날 졸업식은 이제 옛 다큐멘터리 필름으로나 보게 되려나보다. 나는 자식들의 졸업식을 얘기하는 친구들 얼굴을 보면서 여고시절의 졸업식을 떠올렸다.그 시절엔 카메라도 귀해 졸업식이나 해야 사진도 박고 자장면도 한 그릇 먹었다.'찍사' 남자친구는커녕 우리 여학교 옆의 거칠기로 악명 높은 남학교 학생들의 밀가루 세례나 난동을 요령껏 피해야 했다. 그런 세태야 환경에 따라 변할 수도 있지만 언제부터 졸업정서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싶다.그땐 왜 그렇게 울었을까.어찌 보면 감정의 '오버'가 지나쳐 감상적이기만 했던 여학교 졸업식.간혹 진지함과 감상이 짝짓기를 하던 시절의 얘기인지 모른다.함께 했던 학교와 선생님들,정든 친구들에 대한 수줍은 헌사가 눈물이 아니었을까. 가슴속엔 새 출발에 대한 막연히 두렵고 설레는 희망을 소중히 품고서 말이다. 맨 나중에 동창 중 하나가 아들아이 대학 졸업식에 갔다 왔다고 하면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힘들게 가르쳤는데 취직이 안돼 걱정이란다. 그러며 언제까지 자식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모의 그늘 밑에서 어려운 현실을 피하면서 독립할 엄두를 못내는 젊은 층을 '캥거루족'이라고 한다는데 갈수록 고학력자의 취업도 어려운 현실이어서 '새끼 캥거루'는 적지 않을 것이다. 내 보기에 옛날 세대보다 눈물은 없지만 그렇다고 강하지도 않으며 유약해 보이는 젊은이들에게 졸업이란 어떤 의미일까. 아주 일상적인 사건일까? 진부한 비유겠지만 졸업이란 끝이 아니라 일종의 통과제의일 것이다. 모든 통과제의에는 씨앗의 싹눈처럼 고통스럽지만 새 출발의 강한 의지가 들어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모든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한겨울에도 나무나 꽃은 봄의 새 출발을 숨겨두지 않는가.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숨겨진 싹눈의 고통을. 학창시절뿐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도 몇 번의 졸업식을 갖고 싶다. 약하고 진부한 자신을 극복할 때마다 졸업식을 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의지를 충전하고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다면….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제 새 출발을 시작한 화가 친구와 작별하면서 굳게 악수를 하니 그녀가 치렀을 몇 번의 졸업식이 내 마음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