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삼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침체에 빠져있던 경제의 일각에 경기회복의 기운이 감지되는 낭보가 들려오고 있다. 1월 중 카드소비가 15%가량 증가했고 그 동안 부진했던 백화점과 편의점의 매출도 10%가량 늘었다. 소비자 기대심리도 오랜만에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용불량자 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재작년 2·4분기 이후 전례 없이 오랜 기간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던 소비가 기지개를 켜는 기미가 보이는 것이다. 주가는 작년 8월이래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대미 환율의 강세로 위축이 크게 염려됐던 수출도 이전의 추세를 유지하는 호조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경제 여건이 여전히 양호하기에 적어도 당분간은 이러한 추세를 믿을 만해 보인다. 투자는 여전히 부진해 보이지만 한국은행과 전경련의 기업실사지수가 미세하나마 증가세를 보이고 건설수주액과 건축허가면적도 크게 늘어 긍정적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아직 여러모로 어렵기에 이러한 조짐들이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의미한다고 보기에는 경제부총리 말대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작년 초의 그것처럼 그대로 꺼져버릴지도 모르는 작은 불씨다. 이번에도 또 그리된다면 불황의 그늘이 꽤 오래갈 수도 있을 것이기에 이 불씨를 잘 살리는 것은 모두의 희망일 것이다.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 경제는 물처럼 흐르는 유기체이기에 경제를 둘러싼 환경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 수단이 유효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불씨를 살리는 것은 경제당국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국민 모두가 호의적인 경제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지난 2년간의 경험은 정치환경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정치권은 국민들에게는 추상적이고 이상에 치우친 것으로 비치기 십상인 사안을 두고 치열한 대립을 지속함으로써 경제에 큰 불확실성을 안겨왔다. 이와 달리 민생과 경제에 주력하는 근래의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며 경제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동일한 경제사안에 대해 당정청간에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온 적이 여러번 있었다. 또 정부 부처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혼란만 일으키는 이런 일은 당연히 피하는 게 맞다. 그러기에 경제정책의 지휘체계를 분명히 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정책의 일관성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우리사회에 폭넓게 번진 것으로 보이는 부정주의(negativism)를 자제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먼저 보고 찬성보다 반대를 먼저 생각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은 경제를 이끌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존재이기에 그에 버금가는 지원을 해주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고, 자질이 뛰어난 학생은 그에 걸맞은 교육을 받도록 해야 우리사회에 미래가 있음에도 지나친 이기주의 평등주의가 이를 가로막는 면이 있다.그리고 과격한 노사분규,국책사업에 대한 저항 등에도 이러한 색채가 있을 때가 있다. 지나친 부정주의는 경제주체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비효율을 낳아 경제 활력을 저해함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끌어내리기에 결국 스스로에게도 득이 되기 어렵다. 불씨를 살리는 데에는 경제주체 스스로의 노력도 절실하다. 우리 경제는 짧은 기간에 초고속 성장을 해왔기에 선진국에서는 시간을 두고 이뤄진 구조변화가 단기간에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물결은 외환위기 이후에 훨씬 거세어졌다. 현재 큰 어려움이 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은 이런 측면이 매우 강하다. 변화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기업이 외부 지원으로 유지되는 것은 단기간만 가능한 일이다. 낙후된 기술만을 고집하는 근로자에게 좋은 일거리가 생길 리 또한 만무하다. 정부가 표방하는 '동반성장'도 변신의 노력을 전제한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경제의 불씨도 그리해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