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삽으로 퍼 담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1905년 멕시코 이민을 결행한 한인들은 모두 1천33명이었다. 이들은 멕시코가 태평양 넘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그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른채 제물포(인천)항에서 영국 국적의 화물선에 실려 40여일간의 항해 끝에 멕시코에 도착한다. 그러나 '묵서가(墨西哥·멕시코의 한문표기) 드림'은 한갓 신기루였다. 이민자들을 가다리는 것은 오로지 찌는 듯한 땡볕 더위와 악랄한 지주 밑에서의 고된 노동뿐이었다. 게다가 생명같이 여기던 상투를 잘라야 했고 이름 역시 현지어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흔히 마야어인 애니깽(Henequen)으로 불린다. 우리 말로 '용의 혀같다'해서 용설란으로 불리는 애니깽 농장에서 주로 일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구타를 당하고 음식물을 빼앗기고 임금을 깎이기 일쑤였으나,이들에게는 한일합방으로 인해 돌아갈 조국도, 하소연할 어떤 국제기관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애니깽의 날카로운 가시로 온 몸이 긁혀 상처는 훈장처럼 늘어가고 시름은 깊어질 뿐이었다. 이들보다 2년 앞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주한 한인들의 후예가 2,3세를 거치면서 주류사회로 진입하고 있는데 반해,이들의 한 많은 인생역정의 서사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올해로 멕시코 이민 1백주년을 맞아 첫 정착지였던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에서 이번 주 동안 '애니깽 축제'를 갖는다는 소식이다. 벌써 5세대째 살면서 얼굴모양이 달라지고 우리 말을 잊었지만 이들의 핏속에는 아직도 한민족의 정서가 진하게 배어있다고 한다. 이민후예들의 소망은 소박하기만 하다. 한글학교를 세워주고 한국문화원을 설립해 달라는 것이다. 가난을 이기지 못해 짚신을 신고 멕시코 땅을 밟았던 이민자들에게 이번 행사는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게 분명하다. 백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고 해서 세기의 식물로도 불리는 애니깽이,고통의 상징이 아닌 희망의 이정표를 보여주는 꽃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