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과학국채' 발행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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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은 정치인들을 귀머거리라고 부른다.
경제논리를 말해도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정치인들은 경제학자들을 장님이라고 한다.
경제학자들이 정치현실을 못본다는 얘기다.
비슷한 비유를 과학자와 정치인,혹은 과학자와 예산당국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과학자들은 정치인들만큼 비과학적 집단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예산당국에 대해선 왜 통 크게 과학기술을 이해 못해주는지 답답하다고 느낄 성싶다.
하지만 정치인들이나 예산당국은 과학자들을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말만 외칠 뿐 그외 얘기는 할 줄 모르는 사람들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과학국채 발행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빚을 내 과학기술에 투자하자는 얘기다.
이 아이디어는 잘만 포장하면 '과학 뉴딜계획'이라 명명해도 좋을 그런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미래를 준비하자는 얘기같은데 살맛 안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 된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오명 과학기술 부총리는 과학국채는 미래세대가 혜택을 보는 것이기에 미래세대가 그 빚을 갚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투자액이 미국이나 일본에 크게 뒤진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만 가지고는 안된다.
미래세대 수혜 논리라면 과학기술뿐 아니라 어느 분야든 국채발행을 주장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 과학기술 투자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뒤진다는 것은 경제 규모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라기보다는 당연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보다 정교한 논리적 무장이 필요한 이유다.
국채발행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우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일반예산이나 기금을 가지고는 안되는지 설명돼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는 것도 구체화돼야 한다.
빚을 갚아야 할 미래세대가 정말 자기들에게 혜택이 돌아온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현세대가 빚을 내 자기들끼리 나눠먹고 치우는 것으로 비치는 그런 용도는 안된다는 말이다.
또 정부가 정말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민간 기업들이 마땅히 해야 하거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그런 것이어서도 안된다.
잘못하면 민간투자를 위축시키거나 도덕적 해이만 초래하고 말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과기부는 지금 이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사안인 데다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드는,제약조건이 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국채 상환계획이다.
미래세대가 나중에 혜택본다는 것 자체로 상환된 셈으로 쳐 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문제는 상환을 고려해 용도를 정하다 보면 필경 무슨 융자나 투자 등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리되면 미래세대 수혜라든지 정부가 정말 해야 할 일과는 멀어지는 것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더 쉽지 않은 문제다.
국민들이 동의할 용도를 제시해 과학국채 발행이 열매를 맺고,그렇게 해서 조성된 돈이 과학기술혁신본부라는 새로운 조직을 통해 정말 잘 쓰일 수 있다고 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솔직히 누가 필자더러 국채 발행 10조∼20조원 조성과,민간 연구개발투자 10조∼20조원 증대 방안 중 어느 쪽을 고민해 보고 싶냐고 한다면 후자를 택하겠다.
그 쪽이 국가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금의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군더더기 다 털어내고 정말 정부가 나서야 할 곳에 집중 투자하겠다.
이것이 필자만의 생각일까.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