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필 < 연세대 기계공학부 교수 > 차세대 성장동력.듣기만 해도 믿음직스럽고 설레는 말이다. '차세대'란 단어 하나 만으로도 매력적인데 '성장동력'이란 말을 더하니 든든하기까지 하다. 지난해 정부 발표대로라면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이 10년 후에는 우리 모두에게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정책이 발표된지 1년이 지난 지금 관련 정책의 추진 상황을 지켜보면서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고치는 게 낭비를 줄이는 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간의 정책 추진 현황을 점검해 보고 보완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터다. 먼저 '적정한 과제가 선정되었는가'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기업은 새 전략사업을 위해 유능하고 다양한 경험과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신중하고 철저한 분석을 한 후 의사 결정을 내린다. 하물며 국가적 프로젝트야 어떠해야 하겠는가. 선정된 과제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철저히 분석하고 고려해서 선정했다고 보기엔 의문이 많다. 어떤 과제는 치열한 국제경쟁으로 기술개발 내용이 비밀리에 추진해야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어떤 과제는 꽤 매력적이지만 국내 기술력으로 불가능한 것도 있다. 가만히 두어도 기업 스스로 알아서 잘 하고 있는 과제를 정부가 개입,통상마찰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오히려 발전에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나타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가. 과제선정 과정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주도적으로 선정했으며 얼마나 신중하고 철저하게 추진했느냐의 문제다. 10년 후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어갈 '성장동력'의 선정이라면 반드시 산업계 인사들의 주도로 이뤄졌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수년 전 우리와 같은 국책사업을 실시했으며,당시 소니 사장이 관계 장관과 함께 공동 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추진위원 절반이 유수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경우 많은 과제 추진책임자가 경쟁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정부출연연구소나 대학에서 나왔다. 또 정부 발표 후 단 몇 개월만에,그것도 정부 부처간 경쟁적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부처 역할의 적정성도 문제다. 과제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관련 정부부처간 불협화음이었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니 만큼 관련 부처들이 한마음으로 전력을 쏟아도 부족할텐데 부처간 경쟁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정책결정과정을 밟았다. 그러니 추진과정에서의 부처간 협력과 협조가 얼마나 효율적이었느냐는 점은 물어보나마나다. 이대로 밀고나가기엔 무리가 있다.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은 올해부터 본격화된다.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책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람이나,정책을 감독하고 평가하는 사람,그리고 직접 이 일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사업타당성과 추진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추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나 기관들로부터 한번쯤 분석하고 평가받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 지난 경험에 비춰보면 정부는 이미 결정한 과제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바꾸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노출된 문제점들을 개선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이 사업 추진이 기업주도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을 믿고 기업이 추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자칫 시간이 너무 지나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이 우리의 먹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