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중파 TV 중 시청률이 가장 높은 NBC TV 의 저녁 뉴스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 없는 한국 뉴스를 듣기란 참으로 힘들다. 국토안보를 위협하는 외신 외에는 대부분 사건성 국내기사로 채워지기 때문에 한국 뉴스가 파고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NBC TV가 22일(현지시간) 저녁 뉴스 시간대에 뉴욕 외환시장을 강타한 한국은행 쇼크를 상세히 보도했으니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핵심은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 투자 대상을 미국 국채 일변도에서 다변화하겠다고 밝혀 달러 가치가 2%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저 멀리 한반도에서 날아든 소식으로 자국 통화가 2% 가까이 급락했으니 경제기자들이 놀랄만도 했을 것이다. 한 트레이더는 조금 과장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한국 뉴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유외환 투자대상의 다변화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1년 전에도 원론적인 방침을 얘기했었다. 실제 투자대상을 다변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국채만큼 떼일 염려가 없고,팔기 쉽고,이자율은 낮지만 그래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이 별로 없다. 유로화나 캐나다 달러 및 호주 달러는 외환보유액 투자의 3대 원칙인 안전성 유동성 수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투자다변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갖고 있는 미국 국채를 팔아치우기보다는 새롭게 늘어나는 외환보유액으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비율을 조금 낮추는 정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현실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의 한마디로 뉴욕 외환시장이 충격을 받은 것을 보면 미국 달러화 가치가 극히 취약해졌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고 할 수 있다. 작년도 미국 경상적자가 국내총생산의 5.3%인 6천1백77억달러에 달해 획기적인 감축 방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달러 약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또 하나는 미 국채의 최대 수요자인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3개국에 대한 월가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3개국이 갖고 있는 국채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 3개국이 미국과 맺고 있는 정치 경제적인 역학관계를 감안할 때 국채를 내다팔기는 어렵겠지만 늘어난 보유외환의 힘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전날 일본 엔화에 대해 1백3.92엔까지 떨어졌던 달러가치는 23일 뉴욕과 런던 외환시장에서 진정세를 보였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오전 9시 현재 1백4.81엔에 거래됐다. 이는 전날 한은과 대만 중앙은행이 달러를 팔고있지 않다고 해명한 영향이 컸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