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ㆍ경제학 > 재임 1천여일 만에 암살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추모 저서에서 "당신을 잘 알 기회가 없었군요"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재임기간이 짧았지만 그는 비전의 정치인이었기에 후세에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미국민의 가슴에 남아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5년간 집권하기 때문에 국민이 그를 알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길다. 그러나 지금대로 가면 5년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그가 누구이며, 무엇을 지향했었나를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현실사회는 흑과 백 두가지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게 우울한 회색으로 범벅이 돼 있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중심이 회색으로 도배돼 있어서는 안된다. 국정의 불투명이 여당의 오합지중에서 오는 필연적 결과일 수도 있고 고단수의 정치 산술에 의한 기획작품일 수도 있다. 어찌됐거나 국민은 헷갈린다. 현재 국가 안보가 초미의 과제로 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안보 자세는 불투명 바로 그 자체다. 작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방문시 대통령이 북한이 자기 방위용 핵무기 개발계획에 일리가 있다는 돌출 발언을 했다. 바로 2월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이 있었으나 정부의 반응은 미심쩍다. 경제협력 지속 발언은 있었으나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이 없다. 북핵의 일차적 목표가 바다 건너 일본이나 미국이기 보다 휴전선 근접거리에 집중된 그들의 포대가 가리키듯이 당연히 남한이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의당 결연한 한마디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돈·식량·비료를 계속 보내주며 그들에 빌붙어 살 것인가, 한국도 비핵화를 포기하고 미국의 전술핵무기 배치를 서둘거나, 픽션 속 '무궁화 꽃'을 피우거나 그 어느 것을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전체 유권자를 상대로 설득하고 아우르는 보편적 민주방식이 아니라 일부 의식화된 시민단체들(환경 노동 등)과의 협력관계를 중시하는 차별적 민주방식이 채택되고 있다. 한 맺힌 기득권계층의 기세 꺾기 바람에 비기득권 계층의 이해관계마저 훼손시키고 있다.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국민간에는 동침은커녕 동석(同席),동식(同食)도 뜯어 말리며 계층분화를 벌이고 있다. 인쇄·방송 대중매체간 상호투쟁을 유발하는 것이 민주정부가 할 일인가? 지난 2년간 최대 치적인 '깨끗한' 선거와 정치 이미지가 다시 흐려지고 있다. 정치관련법이 최근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허용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올해초 정부가 경제에 '올인' 하겠다는 말이 있자, 요즘 언론들은 대통령이 개혁일변도에서 실용주의로 방향선회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도성 기사를 크게 띄우고 있다. 몇차례 해외순방 길에서 경제의 중요성에 눈을 떠, "기업이 곧 국가"라고 대기업을 추켜세우고 역대 대통령의 재평가 발언으로 화해와 타협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 뿐, 실행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입에 발린 '시장경제'가 사실상 정부 규제강화, 관치경제의 부활조짐 앞에 시들고 있다.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재야출신 비서진들의 영향력을 알 수 없다. 직업 관료와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를 견제하는데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균형잡힌 개혁을 위해서는 보좌진용의 적절한 배합이 긴요하다. 초기 '코드'인사가 변형돼 이런저런 연고의 긴 끄나풀 인사로 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이래저래 이념·이해관계·정서 등으로 정부와 연결된(connected) 느낌을 잃은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정권 연장 꿈은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자중지난을 겪고 있는 여당이지만, 역시 사분오열된 야당 꼴을 보아서는 딱히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이다. 후보 경선 불복자가 나오지 말란 법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누가 정권을 잡든 국가 존립이 보장되고 국민이 잘 살아야 한다. 북핵 문제 같은 발등의 불을 외면하고 행정수도 이전 같은 당리당략에 얼빠져 춤추는 마당굿을 정치라고 한다면, 그런 정권 연장이 국가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방이 튼튼하고 경제가 든든하도록 정치꾼, 관료, 시민단체 모두 '얼차려'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