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유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24일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사우디의 기존 전망치는 물론 시장의 예상치보다 훨씬 높은 것이어서 발언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사우디가 구체적으로 유가전망을 하기는 이례적이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내에서 '유가 안정'역할을 해왔던 기존의 입장이 바뀐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사우디,고유가 지지쪽으로 선회하나=사우디아라비아는 전통적으로 OPEC의 맏형 역할을 하면서도 여타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유가'를 지지하는 온건파였다. 베네수엘라 이란 리비아 등의 강력한 감산요구에도 사우디는 수차례나 유가안정쪽에 무게가 실린 결정을 내렸다. 미국 등 주요 석유소비국들이 유가급등 때마다 사우디에 'SOS'를 요청한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하지만 알 나이미 장관이 원유수급,재고물량,유가안정에 대한 각국의 기대 등을 근거로 "올해 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한 발언에 시장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런던 바클레이스캐피털의 에너지분석가 케빈 노리시는 "이날 발언이 공식적으로 국제유가 목표치를 높인 것은 아니지만 명백한 신호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우디가 그동안 지지해온 '유가안정'입장이 '고유가 용인'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1980년대 고유가를 지지하다 시장점유율이 위축되면서 90년대 들어 '유가안정-시장점유율 확대'쪽으로 유가정책을 바꿨다. 2000년 이후 공식적인 목표유가는 배럴당 25달러였지만 최근 1∼2년 사이에는 목표치보다 높은 유가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석유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평균유가를 배럴당 40달러 정도(WTI기준,지난해에는 평균 41.43달러)로 보고 있다. 알라톤트레이딩의 필 플라인은 "과거에 유가를 높이면서 시장 점유율을 상실한 경험이 있는 OPEC 회원국들이 이제 고유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유가 고공행진 가능성=원유시장은 알 나이미 장관의 발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4월물은 4개월만에 처음으로 장중 배럴당 52달러를 돌파한 뒤 전일대비 22센트 오른 51.39달러에 마감됐다. 런던 국제석유거래소의 북해산 브렌트유 4월물도 93센트 상승한 49.44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원유도입량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도 77센트 오른 42.62달러에 마감,24년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의 주간 원유재고 증가가 예상보다 적은 것도 유가상승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공식적으로 '고유가 지지'입장을 취하면 올해 국제유가가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고공행진을 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계 원유생산량의 13%를 차지하는 사우디가 감산 등을 주도할 경우 수급불안감이 심화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소시에떼제네랄의 애널리스트 데보라 와이트는 "사우디는 고유가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유메이저 셰브론텍사코 최고경영자 데이브 오닐도 최근 "저유가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알 나이미 장관이 원유정책의 변경을 시사하기보다는 단순히 유가전망을 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