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외국계 투자회사 본점에 대한 직접조사라는 '칼'을 빼든 것은 불공정행위로 의심되는 외국계 투자자들의 행태를 방치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3년 이후 SK(주)에 대한 소버린의 적대적 M&A(인수.합병)시도,헤르메스의 삼성물산 단타매매 과정,워버그 핀커스의 미공개정보 활용 혐의 등이 감독당국이 불공정혐의를 두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감독당국은 그간 불공정행위로 의심되는 외국계 투자회사에 대한 조사를 벌여왔지만 이들의 본점 소재지가 외국이고 외국 감독당국과의 공조체제가 이뤄져 있지 않아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현행 법규 무엇이 문제인가 현행 증권거래법도 외국 감독당국과의 업무협조 근거조항을 두고는 있다. 하지만 금융실명법에 가로막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이 감독당국의 판단이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외신기자회견에서 "외국 투자자들의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해 외국 감독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금융실명법 개정 없인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행 금융실명법은 본인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제3자에는 당연히 외국 감독당국도 포함된다. 한국 감독당국이 외국 감독당국으로부터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받고 조사관을 파견해 본점을 직접조사할 수 있으려면 우리도 이를 허용해야 하지만,금융실명법이 이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금융실명법에 예외조항을 두더라도 증권거래법과 금융감독기구설치법에 외국소재 투자회사에 대한 조사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금감위에 따르면 미국이나 영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금융거래 비밀보장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외국 감독기구와의 정보교환을 위해선 예외로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88년 제정한 '내부자 거래 및 증권사기 집행법'에 근거를 명확히 마련했다. 미국과 영국은 10여개 국가와 업무협조약정(MOU)을 맺고 불공정거래 의혹이 있는 외국 투자회사나 투자자에 대한 직접조사를 벌이고 있다. ◆정부의 방침과 향후 일정은 재경부는 금감위의 요청대로 관련법규를 개정할지 숙고하고 있다. 재경부는 금융거래 비밀보장이라는 대원칙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국민정서 및 정치권의 반응은 어떤지 등을 좀더 살펴봐야겠다는 신중한 입장이지만,제도 개선 필요성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관계자는 "국제적으로도 불공정 금융거래에 대해선 공조체제를 구축해가는 것이 최근 추세"라고 말했다. 재경부가 금감위 요청을 수용할 경우 이르면 올 가을 정기국회때 개정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