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유입된 외국계 투자자들의 투기적 행태와 시장교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3년 이후 SK(주)에 대한 소버린의 적대적 M&A(인수합병)시도,헤르메스의 삼성물산 단타매매 과정,워버그 핀커스의 미공개정보 활용 혐의 등에서 나타난 불공정 행위는 국부유출로 이어져 국익에도 문제가 된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실이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기성 외국자본 유입 영향과 대응방안'이란 보고서를 제출한 것도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는 투자 제한업종을 열거한 방식의 현행법이 국내 핵심산업을 해외 기업 사냥꾼들로부터 보호하는 데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은 통신 신문 방송 등 28개 제한업종과 63개 투자유치 제외업종을 명시하고 있으나 새롭게 출현하는 신산업 분야에 대한 보호는 법에 제대로 반영돼 있는 않다는 것이다. 또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 인수는 은행산업의 공공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실제 외국계 은행이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기업대출을 줄이면서 중소기업 자금난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한 뒤 기업을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보다는 단기 차익을 챙기는 데 주력하는 것도 문제라는 인식이다. ◆어떻게 규제하나 정부는 외국자본의 진입 전단계에서 적격성 심사를 대폭 강화해 투기성 자본의 유입을 최대한 차단한다는 복안이다. 또 외국자본이 국내 증권사의 대주주가 된 뒤 유상감자를 통해 내부유보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 사후 보고토록 돼 있는 증권사 유상감자를 사전인가나 신고제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외국계 은행의 상장폐지에 대응해선 금융감독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회사 공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외국계 펀드의 조세회피와 관련,조세피난처로 활용되는 지역을 조세조약 적용 대상에서 명확히 배제하도록 관련국과 조약 개정을 추진 중이다. 투기성 외국자본의 주식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선 증권거래법을 역외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법 개정이 관계부처간 협의되고 있다. ◆외국 본점 직접조사도 추진 재정경제부와 금감위는 불공정 주식거래에 대해선 외국 투자회사의 본점도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외국 감독 당국과의 상호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제3자에 대한 금융정보 제공을 엄격히 제한한 현행 금융실명법 개정도 신중히 고려 중이다. 국내 감독 당국이 외국 감독 당국으로부터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받고 조사관을 파견해 본점을 직접 조사하려면 우리도 이를 허용해야 하지만,금융실명법이 이를 원천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국제적으로도 불공정 금융거래에 대해선 공조체제를 구축해가는 것이 추세"라며 외국과의 업무협조를 위한 관련 법 개정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허원순·박준동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