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때 나의 조상께서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3백75조원 상당의 채권과 금 보관증서를 받았다. 이걸 국내에 들여올 수 있도록 도와주면 떼돈을 벌게 해주겠다." 얼른 듣기에도 황당한 이런 얘기로 투자자들을 모아 7억원대의 돈을 가로챈 사기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특히 이 사기극의 피해자 중에는 모 시중은행 지점장까지 포함돼 있어 '대박의 꿈'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2일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다액사기 혐의로 황모씨(54·여·전세계금융연합 총수) 등 2명을 구속하고 황씨의 보좌관을 하던 류모씨(54)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황씨 등의 사기극은 '전세계금융연합'이란 유령단체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2003년 12월께 당시 H은행 지점장이던 박모씨(51)에게 접근,한화 10조원 상당의 위조된 유고슬라비아 수표를 보여주면서 "이 수표를 국내로 반입하기 위해 금융전문가가 필요하다"며 미끼를 던졌다. 이후 황씨 등은 박씨에게 "1934년에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것"이라며 5억달러짜리 위조채권과 10억달러짜리 금 보관증서 등(총 3백75조원 상당)을 보여주고 "이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필요한 경비를 투자하면 보상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속아넘어간 사람은 박씨를 포함,모두 9명. 피해액은 박씨 6억원 등 7억8천여만원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황씨 등은 채권의 입수경위에 대해 "미국 대공황 당시 조상이 미국을 도와주고 받은 것"이라거나 "미국 정부가 한국의 독립자금으로 조상에게 준 것"이라는 등의 황당한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경찰 조사결과 문제의 채권은 브로커에게 단돈 3백만원을 주고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재무부는 대공황 때 대량 자금조달을 위해 장기채권을 발행했었는데 이를 모방,지난 34년 발행된 것으로 위조된 채권이 국내에 들어와 유통되고 있고 이를 황씨 등이 사기극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위조채권을 건넨 브로커들을 쫓는 한편 이번에 적발된 위조채권과 똑같은 채권이 작년 인천국제공항 관세청에서 적발된 점 등으로 미뤄 다른 사기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 중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