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강경 노동운동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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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 단국대 교수ㆍ경제학 >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에 참여하려고 하면서 내부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일반인에게 사회적 교섭이라는 단어 자체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그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추진돼 왔던 노사정 합의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참여문제를 둘러싸고 지금와서 노동계가 갈등에 빠졌다면 일반 사람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참여 문제를 둘러싼 노동계 내부의 갈등은 표면적 문제일지 모른다.
본질을 알려면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노동운동의 노선을 둘러싼 중대한 시각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사회적 교섭에 참여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측은 악화되고 있는 고용문제 등은 정부와 사용자가 해결하도록 하고 노동계는 투쟁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노동계가 투쟁만 한다면 노동운동은 위축되고 국민들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동계는 노사정위원회의 권한문제같은 조건을 내걸면서 사회적 교섭의 테이블을 만드는 데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교섭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노동계는 당시의 상황 전개를 살피면서 사회적 교섭의 참여가 유리한지 불리한지 등의 여부를 전술적인 측면에서 판단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비정규직의 확산 등 새로운 노동문제가 구조화돼 상황에 맞추어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노동계가 요구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책임도 분담하는 당사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본격화한 지 20년이 다 돼 간다.
투쟁중심의 노동운동은 대기업 근로자들의 소득을 중상위계층으로 끌어올렸고 노동계는 정부와 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토대도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새 노동운동은 중소기업에서 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동떨어진 활동이 됐다.
이 바람에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쟁취하는 수단이었던 투쟁마저 이제는 '아직도…'라는 힐난을 왕왕 받는 처지가 됐다.
노동운동의 내부갈등은 바로 이러한 딜레마에서 비롯된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은 어떤 노선을 택해야 할 것인가.
당장 현재와 같이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투쟁노선을 고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노동조합이 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조합원들은 정신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노동운동의 조직기반과 지지기반 역시 더욱 줄어들 것이다.
투쟁중심의 노동운동은 반재벌·반독재를 철학적 기반으로 삼았지만 정작 상당수 노동조합은 재벌의 이익을 나누어 가지는 또 다른 권력집단으로 변질했다.
부조리한 현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투쟁은 대기업과 정규직에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이란 좋은 선물을 선사했지만 이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우리는 이같은 문제점을 LG칼텍스노조와 기아차노조 추문에서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운동이 사회적 교섭을 통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적 교섭에 참여하기로 작정했다면 과감하면서도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노동계가 정부와 경영계를 상대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다면 일자리문제를 해결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고 노동운동의 조직기반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또 노동시장 전체로 보면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해 노동운동의 지지기반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순환은 기득권을 가진 노동조합과 근로자의 양보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협상은 투쟁보다 힘들다.
그리고 상대가 있는 협상보다 내부 협상이 더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교섭을 통해 노동운동의 위상을 높이려면 노동계는 먼저 달라진 시대상황을 또렷하게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