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헌철 < SK 사장 · hcshin@skcorp.com > 2005년도 신입사원 1백여명이 그동안의 교육훈련을 마친 후 각 부서로 배치받고 첫 근무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서류전형과 필기고사,면접시험을 거치면서 5천여명의 지원자가 결국 1백여명으로 압축됐고,첫걸음을 내딛게 된 후배 사원들을 격려하면서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합격통지서'와 '명함'에 관한 나의 초심(初心)을 실물(實物)로 보이면서 진심으로 당부했다. 얘기의 요점은 합격의 기쁨(합격통지서)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명함)을 처음 맛보면서 누구나 다져본 그 첫 각오를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때때로 들추어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신입사원들이 사상 최대의 취업난을 겪었다고는 하지만,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어느해 치고 극심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던가? 1971년도의 대학 졸업반 시절은 1차 오일쇼크와 10월 유신정치가 시작되기 직전이어서 나라 안팎의 살림이 몹시 어려웠고,몇십명의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은 가뭄에 콩 나듯 하던 때였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터진 대연각 빌딩 화재사건의 엄청난 충격 속에서,초조한 기다림 속에 받아 든 합격통지서는 나 같은 지방대학생에게 영원한 감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속달등기' 표식의 붉은 도장이 2개나 찍힌 겉봉과 필경등사(筆耕謄寫)로 쓰여지고 인사부장의 붉은 도장이 찍힌 누런 갱지의 합격통지서는 그 때부터 34년 동안 정성스럽게 꺼내어 볼 때마다 언제나 그 시절의 초심으로 나를 이끈다. 지방대학 졸업생의 서울 본사 근무라는 기쁨보다는,다른 사람에게 내미는 첫 명함에 대한 자부심이 더 큰 것 같았다. '대한석유공사'로 표기가 시작되는 작은 명함 위의 글자는 내 부족함을 자랑스러운 정체성으로 메워 주었고,지나고 보면 잠깐인 34년 세월 동안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새로운 명함으로 모아지게 했다. 부서가 다르고 직급과 직책이 다를 때마다,3등 완행열차처럼 세월따라 길게 이어져 달려온 그 명함들을 꺼내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변치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어 벌써 휴지통에 들어갔을 빛 바랜 합격통지서와 명함들이지만,내게는 더없이 중요한 몽학(蒙學)선생이 되어 언제나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출발하는 후배사원들도 버리기보다는 소중히 모아서,훗날에 이를수록 오늘의 새 출발 각오를 초심으로 돌아보게 하는 자기만의 가정교사인 몽학선생으로 삼아보도록 충심으로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