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으로 끝내는 영어'라는 영어교재로 이름이 알려진 고제윤 명보학원장(40)는 2002년 한ㆍ일 월드컵때 유명인사가 됐다.


영어로 풀어본 경기결과 예측이 거의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폴란드는 '볼낸다'로, 포르투갈은 'Four two갈',코리아는 '꼴이야'로 풀이해 한국이 16강에 진출한다고 예언했다.


이처럼 익살스런 그가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유명한 명보 보습학원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고 원장은 그 비결을 '피그말리온 효과'로 설명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사랑에 감동, 여인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처럼 타인의 지극한 관심과 기대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이다.


고 원장은 "돈의 잣대로 보면 실패한 학원장이지만 성취감의 잣대로 보면 저만큼 성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창업


96년 5월 1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40여평짜리 학원을 마련하기 전,그는 조그만 출판사를 경영했다.


비교적 일찍 시작한 사업이지만 순항했다.


그러나 거래하던 책 도매상 한 곳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회사 문을 닫게 됐다.


몇 달을 방황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가장 잘 하고,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정한 게 학원사업.그러나 돈이 한푼도 없었다.


"길에서 우연히 대학시절 과외지도를 했던 학생의 부모님을 만났는데 요즘 뭐하느냐고 묻기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선뜻 2천만원을 1년간 무이자로 빌려주겠다고 제안하더군요." 그것은 행운이었다.


고 원장은 대학때 3년간 여러 학생의 과외를 맡으면서 학부모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2천만원으로 좋은 자리에 학원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울 변두리를 빠짐없이 돌아다닌 끝에 서울 오류동에 터를 잡았다.


5백여 가구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자리잡은 건물이었다.


문제는 주변이 온통 여관으로 둘러싸인 점.학생들의 공부 장소로는 누가 봐도 최악이었다.


그는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인근에 여관촌이 형성된 탓에 부모들이 자녀를 먼 학원으로 보내기보다 코앞에 있는 학원에 보낼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보증금 1천만원을 내고 계약한 후 최소한의 자금을 들여 내부 수리를 했다.


"개원하면서 30만원을 들여 광고 전단을 돌렸습니다.


그렇지만 한 주일은 아무도 와주지 않았지요.


아무도 없는 텅빈 강의실을 보노라니 공포가 엄습하데요.


사무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내 얼굴을 보기도 민망해 동네 놀이터를 어슬렁거리다 퇴근하곤 했지요." 그때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중학생 두 명에게 무료강의를 약속하고 부모님을 찾아가 승락을 받았다.


◆열정을 바친 강의


1개월간 공을 들인 끝에 원생은 2명에서 10명으로 불어났다.


선생님도 두 분 채용했다.


비록 한 반에 2∼3명이 있더라도 20명이 앉아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고 수업을 하자고 다짐했다.


아내와도 당분간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저녁에 귀가하지 않은 채 학원 사무실 한편에 간이침대를 마련,잠을 자면서 학원운영을 치밀하게 구상했다.


밤새워 학생들의 지도를 위한 갖가지 방법을 짜냈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은 학원에서 밤을 새웁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끼여드는 안일과 나태 같은 것들을 배척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6월 말에서 7월 초에 이어진 기말고사에서 명보학원 학생들은 놀랄 만한 성적향상을 이뤄냈다.


그 중 한 학생은 평균 50점에서 85점으로 35점이 껑충 뛰었다.


모두 12과목 총 3백80점이 올라간 셈이었다.


20여명 중 18명이 평균 20점대를 훌쩍 뛰었다.


8월이 되자 학원의 의자에는 빈 자리가 없게 됐다.


순풍에 돛을 단 격이었다.


◆좌절의 순간들


98년 초 시작된 IMF 위기는 어김없이 고 원장에게도 닥쳤다.


사업을 하던 학부모들이 잇따른 부도를 냈다.


학생 두 명은 충격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영영 잃었다.


고 원장이 조문을 갔을 때 딸만 넷을 둔 학생의 어머니는 실신한 상태였다.


어떤 학생의 아버지는 병원에서만 2년여를 보내다 재산을 병원비로 다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차분히 학원을 다닐 형편이 못 됐다.


학생수가 30여명선으로 뚝 떨어지고 학원경영은 겨우 수지를 맞출 정도가 됐다.


고 원장은 이때를 오히려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다.


"어차피 몸부림 쳐봐야 학생이 늘기는 힘든 때였어요.


대학원에 진학했지요.


공부를 더 하려고요."


2003년에는 초등학생들을 받기 위해 초등학교 학습 전문 브랜드와 가맹 계약을 맺었다.


그 브랜드는 TV광고까지 내보내 꽤 인지도가 높았다.


가맹비와 물품비를 내고 가맹점이 됐다.


본사의 지도대로 광고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1년여 동안 단 한 명의 원생도 확보하지 못한 것.섣불리 남의 것을 모방하려다 실패한 시절이었다.


◆인성 교육으로 승부


고 원장은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불필요한 경비절감을 학원경영의 대원칙으로 삼았다.


대부분 학원들이 돌리는 지입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4과목을 가르치는 학원비는 월 16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수한 강사 영입에는 과감하게 투자한다.


다른 학원과 차별화하는 방법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적향상은 학과 공부와 인성교육이 동시에 작용한다는 게 학원경영 9년의 경험칙입니다.


한달에 한번 부모님 안아주기 같은 숙제를 내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대학생이나 군인이 돼서도 학원을 꾸준히 찾아주는 아이들 때문에 도저히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네요."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