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가 군납 비리로 사임한지 1년 밖에 안 된 미국 보잉에서 이번에는 후임자가 섹스 스캔들로 쫓겨났다. 1백여년동안 전세계 항공산업을 지배해온 보잉의 명성이 온갖 추문 속에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보잉은 7일 해리 스톤사이퍼 최고경영자(CEO)가 '사내 윤리규정 위반'으로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발단은 열흘 전 회사 간부들 앞으로 보내진 익명의 제보. 이 편지에는 'CEO가 올초 수 주동안 모 여성 간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보잉이 익명의 제보를 받은지 며칠만에 CEO를 서둘러 해임한 것은 스캔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회사 비상근 부회장 루 플랫은 "사실 여부를 떠나 회사 명성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윤리 규정을 어겼다"고 CEO 해임 이유를 설명했다. 이 윤리 규정은 스톤사이퍼가 직접 제정한 것이다. 보잉은 지난 2003년말 미 국방부에 공중급유기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보잉으로 스카우트해준다는 것을 미끼로 국방부 구매담당자와 결탁,금액을 부풀린 사실이 들통나는 등 무리한 군납 로비 관행이 잇따라 밝혀져 명성에 잔뜩 금이 간 상태다. 당시 이 사건으로 물러났던 마이크 시어스 전 CFO는 지난달 4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스톤사이퍼 전 CEO는 2001년 은퇴했다가 회사의 명예 회복을 위해 재영입된 사람이다. 그는 그동안 국방부와의 관계 회복에 주력,지난주 공중급유기 사건 이후 박탈당했던 국방부 입찰 자격을 되찾는 데 성공하고 주가도 9·11이전 수준으로 간신히 회복시켜놨다. 그런 그가 또 스캔들로 사임함에 따라 보잉의 앞날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상용기부문에서 보잉의 점유율은 지난해 42%로 추락,경쟁사인 유럽 에어버스(57%)에 2년 연속 뒤졌다. 이는 보잉이 무리하게 군납을 추진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다우존스는 항공업 리서치 회사 JSA의 분석을 인용,보잉의 앞날은 신제품 787의 판매 성적에 달려있다고 보도했다. 787은 작년 8월 첫 주문을 받은 후 지금까지 65대가 팔렸다. 보잉은 이 비행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 올해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10% 많은 5백80억달러로 제시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