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버려라, 얻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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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쥐면 잃을 것이요.버리면 얻을 것이라.'
취업이나 경력관리 컨설턴트들이 상담시 애용하는 멘트다.
고실업과 조기퇴직의 위협속에서도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다국적 인력그룹인 아데코에서 전직 지원을 맡고 있는 한 컨설턴트는 "잘나가던 임원 한 명은 명예퇴직 대상이 된 후 이직훈련을 받던 중 손수 커피를 타야 한다는 데 충격을 받고 몇개월이나 정신적 공황에 빠졌고,한 전직 부장은 길에서 옛 부하를 만나 반말로 말을 걸었다가 싸늘한 대꾸를 받곤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대인공포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봤다"고 말한다.
청년실업난도 다를 바 없다.
청년실업자가 40만명을 헤아리지만 중소기업에선 사람이 귀하다고 하소연이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필요한데도 뽑지 못했거나,뽑았다 하더라도 얼마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를 합친 '신규인력 부족률'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왜곡된 직장관이 인적자원의 불균형을 초래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으로 우려한다.
이런 가운데 8일 채용업체 리크루트가 내놓은 설문조사 자료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외형강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직장인과 구직자 9백56명에게 첫 직장으로 선호하는 기업을 물었더니 '튼실한 중견,중소기업'이 첫손(42.2%)에 꼽혔다는 결과였다.
각종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 단골 1등이었던 대기업(37.8%)은 그 다음이었다.
"재수,삼수를 해서라도 대기업을 가겠다고 고집하던 구직자들이 최근 중견 기업으로 눈돌리는 경향이 미미하게나마 감지된다"는 게 업체측의 분석이다.
산업 고도화속에 취업난이나 구조조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구직자들도 적극적으로 달라진 환경을 끌어안을 때다.
한 발 물러서기가 때로 전 우주를 들어올리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했지만,일단 물러만 서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한 소설가의 말을 구직자들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김혜수 사회부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