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첫 주례 ‥ 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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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두 <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cdkim@esandan.net >
나이가 좀 들면서 누구나 한두번은 결혼식 주례 부탁을 받게 된다.
필자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후배,직장부하 등이 몇번 주례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현직에 있다는 핑계를 들며 사양해 왔다. 아직 주례를 설 만한 자격이 없다는 속내에서였다.
벌써 그런 나이가 됐나,사회의 모범이 되고 존경 받을만한 덕망은 있는가.
이런 생각에 나이 지긋한 어른들 앞에서 내가 신랑 신부를 충고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 같다.
또 옛 어른들이 주례는 자기 자녀 혼사경험이 있어야 한다기에 미뤄왔는데 이번에 우연찮게 첫 주례를 서게 됐다.
먼 친척 당숙 집안에서 동생 주례를 막무가내로 맡기기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막상 수락을 하고보니 주례사가 걱정이었다. 이런저런 주례사를 찾아보고 오래도록 기억될 내용을 쓰기 위해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부간의 사랑이나 가정의 소중함,사회에 대한 감사와 봉사,부모형제 효도와 은혜 등 뭘 적기가 쉽지 않았다.
주례사는 짧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었다.
예식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빛바랜 결혼 사진을 보며 모처럼 우리 결혼식 주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젊은 시절 우리 부부가 공감했던 기억을 되살려내기로 했다.
설경 위에서 펼쳐지는 러브신과 아름다운 영화음악이 유명한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속의 명구절이었다.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거예요."(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당시로는 여자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자기 순결성(純潔性)과 오만함에 대한 아쉬움이었지만,그간 살아오면서 사랑을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던 구절이었다.
부부간의 사랑은 무엇보다 서로에 대해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생각하고 행동할 때 진정한 부부의 사랑을 꽃피울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첫 주례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야 신랑 신부보다 내가 더 긴장되고 떨리던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부부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모처럼 내 자신을 뒤돌아보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다가오는 새봄에 결혼이라는 참으로 아름답고 벅찬 과제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무한한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