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의 진로 이천 공장.주채권자인 골드만삭스가 36억달러로 몸값을 제시한 진로의 주력공장이다. 알코올 도수 10도 이상의 고도주 단일 생산 설비로는 세계 최대 규모.연면적 1만3천여평의 이 공장에서 생산된 소주는 지난해 10억병을 웃돈다. 그러나 공장 정문에 들어섰을 때 느낌은 '세계 최대'의 이미지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전면 굴뚝에 새겨 있는 '참이슬'로고는 비바람에 닳고 닳아 이제는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건물 외벽 곳곳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고 옥상에는 웬만한 중소기업 공장에서도 볼 수 있는 방수처리 조차 돼있지 않다. 공장 앞 공터의 야적장에 수북이 쌓여있는 소주 박스들 위에는 천막용 비닐 조각만이 달랑 눈비를 막아 주고 있다. 재계 20위권의 대그룹에서 부도,화의,법정관리,그리고 공개 매각을 앞둔 처지에 이르기까지 '진로의 영욕'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장 내부다. 대부분의 생산 라인이 '폐차 직전의 버스'처럼 수명이 다된 노후 설비들이라는 것이다. "이천공장의 7개 생산라인 중 5개가 평균 10년이 지난 노후 설비들입니다. 당장은 생산 차질이 없다 하더라도 내년부터라도 '펑크'가 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요. 버스도 폐차 직전까지는 그럭저럭 굴러가다가 갑자기 서 버리는 것 아닙니까."(이천공장 생산관리 부서 간부 A씨) 그는 또 "부도 이후,특히 법정관리 개시뒤에는 설비투자가 극도로 위축돼 노후화가 한층 심해졌다"며 "잦은 야간 보수작업 등 직원들이 '몸으로 때우면서' 간신히 가동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진로는 97년 부도 이후 노후설비교체 등 공장에 대한 정상적인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못했으며 이런 양상은 법정관리 이후 더욱 심화됐다. 회사측은 이천공장을 비롯 청원·마산공장 등 3개 공장에 대한 적정 설비투자비를 연간 2백억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도 이후 이를 충족시킨 때는 법정관리 직전인 2002년 한번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적정 금액의 60%선에 불과했다. 특히 법정관리에 들어간 2003년에는 설비투자에 쓰인 돈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천공장 간부B씨는 "지난해 30%의 영업이익률을 낸 것은 마케팅,연구개발비 등의 최소화와 함께 설비투자가 억제된 것도 주요 요인중 하나"라며 "(설비투자비로) 나중에 한꺼번에 더 많은 돈이 들어갈 일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진로 공장 직원들은 지난주부터 '고용보장,생존권 사수'구호가 적힌 리본을 달고 다닌다. 이 리본을 내려다 보며 매각 후 고용보장을 걱정하는 한 직원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새 주인이 와서 노후된 설비를 대대적으로 바꾸게 되면 본전 생각이 더 날텐데…."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