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주재 프로이센 공사를 지낸 비스마르크는 1862년 프로이센 재상자리에 오르자마자 도로·철도 개설 등 대대적인 국토발전계획을 추진한다. 비스마르크는 나폴레옹 시대의 도시계획을 참고로 백년대계의 큰 그림을 그렸다. 당시 마련된 베를린 도시골격은 1백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예전 그대로다. 건물은 새로 들어섰지만 주요 도로나 도시구역 획정은 비스마르크 때나 별반 차이가 없다. 역사 배경이 다르듯이 국토정책의 기조도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음 세대까지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국토를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활용해 경제발전의 인프라를 다져야 한다는 사실은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에게서 배울 수 있다. 국토정책 수립에 장기안목이 요구된다는 측면에서 행정도시 이전과 맞물려 최근 정부·여당에서 흘러나오는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은 지극히 염려스럽다. 서울공항 이전검토,공장총량제 완화,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 및 지방대 수도권 이전 검토 등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수도권 규제완화 방안들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수도권 과밀억제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사실상 천도까지 추진했던 정부·여당이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안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수도권규제 완화를 쏟아내는 게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토정책을 정치적으로 재단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행정도시 및 공공기관 이전계획으로 수도권의 민심이반 양상이 나타나자 규제완화 방안을 쏟아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행정도시 건설 때문이 아니라도 그동안 수도권을 과도하게 묶어놓는 바람에 오히려 희소가치만 높여놓은 꼴이 되었다는 지적을 감안하면 수도권 정책의 손질이 불가피해진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일단 풀고보자는 식은 수도권 해법의 능사가 아니다. 김영삼 정부시절 규제완화를 앞세워 수도권 준농림지를 무턱대고 푸는 바람에 한국의 국토발전은 한 시대를 퇴행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당시 수도권에 대한 그랜드 플랜을 세우지 않고 토지(준농림지)규제를 풀자마자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는 고스란히 아파트 분양가에 전가됐다. 또 용인 등 경기도 일대 준농림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은 난개발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여당은 행정도시 이전의 대가로 수도권 정책을 손질하기 앞서 과거 준농림지의 실패 경험을 교훈삼아야 한다. 수도기능이 반분되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역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도 지방의 눈치를 보는지 수도권의 장래에 대한 중앙정부의 대안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년간 묶었던 땅을 찔끔찔끔 즉흥적으로 풀게 되면 풀리는 땅은 물론 주변 땅까지 기대심리로 뛰게 마련이다. 판교신도시가 그렇지 않은가. 이런 경험에 비춰볼 때 중앙정부와 지자체(서울·인천·경기도)가 머리를 맞대고 먼저 수도권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한 세대를 내다보고 수도권 전체의 개발용도를 확정한 다음 개발 우선순위에 따라 규제를 풀어야 한다. 이래야 향후 용도변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개발용지보다 주변 땅값이 더 뛰고 투기꾼들이 날뛰는 부작용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땅은 인과응보의 성질을 갖고 있다. 사람 하기 나름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내달 중 수도권 발전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가능한 한 많은 경제주체들이 땅에서 공평하게 보답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수도권 발전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김호영 사회부 차장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