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李憲宰) 전 경제부총리 후임 인선을 계기로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 전 부총리가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한 뒤 후보자가 4배수까지 거론되는 과정에서 `여론재판'식 검증이 이뤄지면서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그간 인사 때마다 비판의 도마에 올랐던 검증시스템에 완벽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이번에 후보자들을 여론의 판단에 맡기는 듯한 방식을 취했지만,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적임자를 찾기보다 누가 더 약점이 없는지 파헤치는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간 게 사실이다. 실제 후보자로 거론됐다가 탈락한 인사들은 `경제 수장' 후보군에 올랐다는 영광은 커녕 평생 공들여 쌓아온 명예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됐다. 현역 의원이자 여당의 경제정책 책임자인 강봉균(康奉均) 의원은 아들의 병역미필 문제와 과거 정치자금 문제가, 윤증현(尹增鉉) 금융감독위원장은 외환위기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실장이었다는 점이 각각 결정적 흠결로 부각되면서 탈락한 모양새가 됐다. 뒤이어 부상한 신명호(申明浩) 전 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는 능력을 떠나 율산그룹 신선호 회장의 친형이자 역시 율산 출신인 정문수(丁文秀) 청와대 경제보좌관과의 동창이란 개인적 인연에 부정적인 시선이 모아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마지막으로 부상한 한덕수(韓悳洙) 국무조정실장을 포함해4명을 처음부터 병렬로 놓고 다각적인 인사검증을 실시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론검증 주장은 오해"라고 밝히고 있다. 김완기(金完基) 청와대 인사수석은 14일 한 부총리 기용을 발표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강 의원은 `당.정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며 고사했고, 윤 위원장은 `금감위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며 고사했다"며 검증과정에서 `도덕성' 시비가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김 수석은 또 "네 분 모두 처음부터 후보로 검토됐다"며 "강 의원과 윤 위원장이 먼저 표면적으로 언론에 드러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먼저 강 의원과 윤 위원장을 유력후보군에 있다고 밝힌 뒤 신전 부총재의 부상을 언론에 전했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이들 3명이 순차적으로 탈락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이기준(李基俊) 전 교육부총리 인사파동을 계기로 지난달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선 과정에서 도입한 사전검증 시스템이 시행 두번째 만에 `여론의 역풍'에부닥친 것은 청와대가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검찰총장 인선만 해도 후보자로 거론되기 전부터 자체적으로 여과가 이뤄지고해당 조직의 본능적인 보호논리가 작동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경제부총리의 경우누가 되느냐가 시장에 영향을 주는 데다 재계와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보.혁 대결 양상으로 비쳐진다는 점에서 사안의 민감성과 폭발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인선만 해도 검찰총장 인사 때와 비교할 수 정도로 시장에 `아니면 말고'식의 음해성 루머가 난무했고, 이는 인사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가 언론에 사실상 공지를 통한 인사검증을 밟은 것에 대해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나 인사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 모두 뾰족한 대안이 있는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언론에 사전 공지 없이 인사를 하면 `인사밀행주의'라고하고, 사전 검증을 하면 `여론재판'이라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구조적 허점을 메우기 위해 일부에선 청와대가 한 달간 `인사 보안'을 유지했던 조기숙(趙己淑) 청와대 홍보수석 임명 때처럼 언론의 비보도 협조를 얻는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헌재 파동'에서 보듯 갑작스런 인사요인이 발생하거나 앞으로 있을지모를 대폭 개각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맹점으로 지적된다. 이같은 딜레마 때문인지 청와대측은 사전검증이란 새 인사시스템의 골격은 유지하되 이번에 문제점으로 드러난 부분은 민정수석실 등 자체 기구를 통해 보완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완기 수석은 사전검증 방식에 대해 "공직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도덕사회, 투명사회를 앞당기는 좋은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수석이 거론한 `공사(公私)간의 건실성', 즉 도덕성이 향후 고위공직자 인사에서 부차적이지만 결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고위직에 대한 인사검증 문제는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청문회 제도 확대 등 법제화를 통해 해결해갈 것"이라며 "시간이 좀 걸릴 것이지만현 제도를 계속 밀고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특히, 그간 툭하면 낙하산, 정실 인사라는 의문이 제기돼온 공기업 인사 방향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을 폭넓게 구해 일을 맡기겠다"고 전제한 뒤 "시기가조금 늦어지더라도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철저한 검증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최근 KOTRA 사장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기존 조직에서 추천된 최종 후보자 3명을 탈락시키고 재공모를 실시키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