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부 못믿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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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요 수출기업 자금담당 임원들의 얼굴은 잔뜩 부어 있다.
단순히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 때문만은 아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환율 움직임을 종잡을 수 없어서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환율 1천1백50원대 시절부터 환율 방어 의지를 피력해왔던 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최근 환율하락 속도는 지나치다" "가파른 환율하락 좌시하지 않겠다"는 등의 표현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방어선의 지속적인 후퇴로 나타났다.
환율이 1천60∼1천70원 수준이었던 지난해 11월엔 재경부 당국자가 주요 기업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달러화 매도자제를 공식요청하기도 했다.
그 당국자는 당시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 상승과 아시아 국가들의 미 국채 매각확대 가능성 등으로 환율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정부의 말을 믿고 현물환 매도를 미뤘거나 선물환 매도 헤지를 걸지 않은 기업들은 요즘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다.
기업들의 불안감은 최근 환율이 수시로 1천원선을 위협받으면서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발권력을 동원하며 환율 하락 저지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돈을 찍어 글로벌 달러화 약세를 어느 정도까지 막을 수 있다는건지 명쾌한 설명이 없다.
모기업 임원 A씨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모호한 어법에 비슷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지난 97년 환율 1천원선 밑에서 모든 실탄(매도 달러)을 다 소진해버린 뒤 곧장 2천원선까지 방어선을 내줬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몸서리를 쳤다.
이제는 정반대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외환보유액 2천억달러 달성을 발표하며 '축배'를 들었지만 정작 환율하락을 저지할 실탄(달러매입 원화)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1천원 사수냐,아니냐의 차원을 넘어선 느낌이다.
조일훈 산업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