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1970년대의 석유파동 때와는 달리 최근 유가 상승으로 벌어들인 '오일 달러'를 해외 수입에 대거 사용,세계 경제에 미치는 고유가 충격이 과거보다 크게 완화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보도했다. OPEC 회원국들의 인구가 지난 70년대보다 크게 늘어나 수입 규모가 커진 데다,이들 국가의 사회간접자본과 산업시설 투자도 대폭 확대돼 유가 상승에 따른 세계 경제의 충격이 상당부분 흡수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석유 판 돈으로 수입품 샀다=PFC에너지 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11개 OPEC 회원국들의 석유수출 총액은 3천1백66억달러로 전년보다 7백93억달러(34%) 증가했다. 이들 국가의 수입 총액은 2천2백9억달러로 전년 대비 2백60억달러(13%) 늘어났다. 오일달러의 3분의 1을 해외 수입에 다시 쓴 것이다. 에어버스는 지난해 걸프지역 항공사들이 신형 A380여객기를 51대나 주문하는 바람에 중동지역 매출이 5년 만에 두배로 뛰는 특수를 누렸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벤츠S 클래스 등 고급차 수요가 급증,중동지역 매출이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캐논은 디지털카메라 등의 판매 신장으로 작년 중동 매출이 38%나 뛰었다. OPEC 회원국들은 금융 투자에도 적극 나서 지난해 미 증시에서만 2백2억달러어치의 주식을 매입했다. 여기에 러시아 멕시코 바레인 가봉 오만 등의 산유국까지 합치면 작년 미 증시 순매입액은 6백77억달러에 육박한다. 이는 2003년의 미 증시 순매입액보다 4배나 늘어난 것이며,유럽연합(EU)과 중국의 작년 미 증시 투자액과 비교해서는 각각 25%와 43%가 많았다. ◆70년대 말과는 다르다=OPEC 회원국들의 커진 씀씀이는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지난 70년대 말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78∼79년 OPEC 회원국들의 석유수출 총액은 2년 만에 두배 이상 늘었으나,이들 국가의 해외수입액은 오히려 줄었다. 당시에는 산업 구조 자체가 워낙 낙후돼 있어 오일 달러를 벌어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내수 시장도 충분히 발전돼 있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이들 국가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79년 3억1천2백만명에 불과했던 OPEC 회원국들의 인구도 지금은 5억2천6백만명으로 69%나 늘어나 석유수출 대금의 상당 부분이 해외 수입 창출로 연결되고 있다. 중동 특수를 많이 본 국가들로는 작년 1∼9월 중 OPEC지역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7% 늘어난 EU가 가장 먼저 꼽혔으며,일본(21%) 중국(16%) 미국(15%) 등의 OPEC 수출도 예년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WSJ는 "산유국들이 수입을 늘려 고유가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는 시각은 향후 OPEC의 고유가 정책 고수를 부추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